그대는 모르리
2010. 9. 10. 00:47
가을이 오는날
시/김현승 구월에 처음 만난 네게서는 나프탈린 냄새가 풍긴다. 비록 묵은 네 양복이긴 하지만 철을 아는 너의 넥타인 이달의 하늘처럼 고웁다.
그리하여 구월은 가을의 첫입술을 서늘한 이마에 받는 달. 그리고 생각하는 혼(魂)이 처음으로 네 육체 안에 들었을 때와 같이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너의 눈은 지금 맑게 빛난다.
이달엔 먼 수평선이 높은 하늘로 서서히 바꾸이고, 뜨거운 햇빛과 꽃들의 피와 살은 단단한 열매 속에 고요히 스며들 것이다.
구월에 사 드는 책은 다 읽지 않는다. 앞으로 밤이 더욱 깊어질 터이기에 앞으론 아득한 별들에서 가장 가까운 등불로 우리의 눈은 차츰 옮아 올 것이다.
들려오는 먼 곳의 종소리들도 이제는 더 질문하지 않는다. 이제는 고개 숙여 대답할 때다. 네 무거운 영혼을 생명의 알맹이로 때려 얼얼한 슬픔을 더 깊이 울리게 할 것이다.
그리고 구월이 지나 우리의 마음들 갈가마귀처럼 공중에 떠도는 시월이 오면, 이윽고 여름의 거친 고슴도치는 산과 들에 누워 제 털을 호올로 뽑고 있을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