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시 원태연 / 낭송 이재영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아침에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으며
내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걸 알았습니다.
참으로 따뜻하고 행복합니다.
언젠 가부터 저는 행복이 TV드라마나 CF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거울을 통해서
보이는 제 눈동자에서도 행복이 보인답니다.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어쩌면 이렇게도 좋은 일들만 생길 수가 있는지.
그렇게 늦게 오던 버스도 어느 새 내 앞에 와
어서 집에 가 전화를 기다리라는 듯
나를 기다려주고 함께 보고 느끼라는 듯
감미로운 사랑 얘기를 테마로 한 영화들이
속속 개봉되고 읽어보고 따라 하라는 듯
좋은 소설이나 시집들이 눈에 띄고 있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그의 생일이 찾아옵니다.
그의 생일날 무슨 선물을 건네줄까
고민하는 내 모습이 참 이뻐보입니다.
언제나 나를 떠올릴 수 있게 메모와 지갑을
겸할 수 있는 다이어리 수첩을 사줘볼까?
하며 이런 저런 고민을 하는 내 모습이
그렇게도 행복하게 느껴질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아침에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으며
내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걸 알 수 있을 때
문득문득 불안해지고는 합니다.
사랑하면 안 되는데, 또 그렇게 되면 안 되는데.
버스가 너무 빨리 와 어쩔 수 없이
일찍 들어간 집에서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
전화기만 만지작만지작
쳐다보고 있으면 안 되는데,
감미로운 사랑 얘기를 테마로 한 영화가
개봉될 때마다 아직도 흘릴 눈물이 남아있는지
확인하게 되면 안 되는데,
읽을만한 거라고는 선물 받았던 책
밤새도록 뒤적이며 울고 또 울게 되면 안 되는데
입을 맞추고 싶다가도 손만 잡고
말아버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생일 선물 하나 고르는데 몇 날을 고민하는
이번에 또 잘못되더라도 기억 속에 안 남을 선물을
고르려 노력하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이번에 또 그렇게 되면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서인가 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또 생기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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