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억방 ♣

[스크랩] 박정희 대통령 생가

그대는 모르리 2007. 11. 21. 10:33
★★★故 朴正熙 大統領 生家 訪門記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집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生家까지는 약 3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큰맘 먹지 않고는 가보기 어려운 곳이다 .

특별한 이슈가 없는 한 한번 가본 곳이기 때문에 관심 밖에 있기 마련인 것이다.

저도 약 5년 만에 다시 가보는 것 같다.

大選 때만 되면 박정희 鄕愁가 일어나 大選走者들은 싫든 좋든 은근히 이것을 이용하든지 모방을 하곤 한다.

이번에 생가를 방문하게 된 것도 그동안 얼마나 변하였는지,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박정희 前 대통령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다 .

 

생가 입구에는 제법 큰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는데 관광 버스와 승용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곳으로 구분되어 있다.

제가 방문한 시각이 약 10시경이었는데 그때 까지는 몇 명만이 보였었는데 조금 지나니 20~30명으로 늘어나 제법 참관객이 많이 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구미시내 주요 도로의 이정표에는   이렇게 박대통령 생가 위치를 표시 해 놓았다. 

ParkPresident_070121_01.jpg

 

주차장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오는 것이 "새마을 운동 중흥"비 이다.

아마 박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 중에 하나인 새마을 운동을 기념하기위해 세운 것 같다.

비석 하단부에 새마을 운동 효시에 대한 글이 적혀 있다.

ParkPresident_070121_02.jpg

 

입구 오른 쪽에는 조그만 공원처럼 꾸며 놓았으며 이곳에는 中興亭이라는 정자와 앉아 쉴 수 있는 벤치가 준비 되어있었다.

예전 보다는 한층 깔끔하게 정비가 되어있었고 구미 시에서 2010년까지 인근에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에 대한 안내 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부지 23,580평에 시대촌 건설, 생가복원, 기념관,옥외 광장을 골자로 하는 기념 사업을 하겠다고 한다.

기념 사업이 시행될 장소는 현재 포도밭이며 아직까지 공사가 시작되지는 않았다.

ParkPresident_070121_04.jpg

 

이곳에는 비석이 총3개가 세워져 있는데 비석을 세운 단체가 제각각 다르다.

물론 구미 시나 혹은 관리기관의 허락 하에 세워졌겠지만 碑文의 선택이나 디자인 등 좀 더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래 비석의 글은 61년 5월 당시 제 2군 부사령관으로 재직 중 군사 혁명을 하기위해 비행기편으로 상경 중 구미 금오산 상공을 지나면서 쓴 글이라고 한다.

 

" 국민에게

황파에 시달리는 삼천만 우리 동포

언제나 구름 개이고 태양이 빛나리

천추에<한>이 되는 조국 질서 못 잡으면

내 민족 앞에 선혈(鮮血)바쳐 충혈원혼(充血寃魂)되겠노라. 

 

향토 선배에게

영남에 솟은 영봉 금오산아 잘 있거라

삼차 걸쳐 성공 못한 흥국일념(興國一念) 박정희는

일편단심 굳은 결의 소원 성취 못하오면

쾌도할복(快刀割腹) 맹세하고 일거귀향 못하리라.

"

ParkPresident_070121_05.jpg

 

아래 사진은 중흥정(中興亭)이라는 정자로서 박정희 대통령께서 대한민국의 발전에 공헌한 것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듯하다.

ParkPresident_070121_06.jpg

 

입구 골목 옆에는 제법 큰 나무도 있어 까치들이 손님들을 맞아 주고 있다.

ParkPresident_070121_13.jpg

 

주차장에서 입구 골목을 들어서기 직전 오른쪽에 있는 생가 안내 표지.

ParkPresident_070121_07.jpg

 

표지판 위치에서 바라본 입구 골목 ,

골목 우측 편에는 박정희 대통령 생가에 대한 자세한 안내표지가 있다.

ParkPresident_070121_08.jpg

 

입구에서 생가를 등지고 바라본 모습.

지금은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하며, 특히 왼편의 고층 아파트가 들어 설 무렵 생가를 가로 막는다 하여 언론에서도 거론 되었던 건물인데 결국은 허가를 해 주었던 건물이다. 왼쪽이 주차장이다. 

ParkPresident_070121_09.jpg

 

생가 안내판이다.

ParkPresident_070121_10.jpg

 

생가 안내판 뒷면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있다.

ParkPresident_070121_11.jpg

 

ParkPresident_070121_12.jpg

대문 바로 직전 오른쪽에 비석이 하나 더 있다.

"고 박정희 대통령 생가 안내 비 "라는 제목이지만 내용에는 새마을 운동 21주년을 맞아 세웠다고 했다.

띄워 쓰기가 너무 과장되어 있어 가로 읽기인지, 세로 읽기인지 처음에는 헷갈린다.

 

생가를 들어 서기 직전 모습. 바로 앞이 대문이다.

ParkPresident_070121_14.jpg

 

대문에서 밖을 바라보고

가족 끼리 혹은 나이 지긋하신 친구분들 끼리, 계속해서 참관객들이 끊이질 않고있다.

ParkPresident_070121_16.jpg

 

생가를 들어서기 전 왼쪽 편에는 焚香所가 마련되었다.

ParkPresident_070121_25.jpg

 

대문을 들어 서면 왼편에 박대통령의 생전 모습들을 대형 사진으로 하여 전시 해 놓았다.

ParkPresident_070121_26.jpg

 

          분향소 옆 한 켠에는 방명록이 준비되어 있고 박 대통령 생가 안내도(한글,영어,일본어,중국어) 와 사진집도 있어 참관객들에게 유익한 정보와 박 대통령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 해 준다.

ParkPresident_070121_27.jpg

 

생가의 모습이다

경상북도 지정 기념물 제86호로 지정되어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1917년 태어나서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 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ParkPresident_070121_15.jpg

 

방이 2개인데 왼쪽 방이 사랑채이고 오른쪽에 있는 방이 대통령께서 태어나시고 공부하시던 방이다.

ParkPresident_070121_17.jpg

 

원래의 집은 이런 모습.

다 찌그러져 가기 직전의 오두막 집이다.

ParkPresident_070121_18[1].jpg

 

사랑채.

방안에는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영정이 놓여져 있다.

ParkPresident_070121_19.jpg

 

박 대통령께서 태어나시고 공부하시던 방

ParkPresident_070121_20.jpg

박 대통령께서 사용하시던 책상,책꽂이,호롱불.          

벽에는 대구 사범학교시절 고향에 와서 어머님과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있.

ParkPresident_070121_21.jpg

부엌과 외양간

ParkPresident_070121_22.jpg

 

집 옆에 감나무 한그루가 있는데 박대통령께서 1929년경 봄에 어머니와 함께 이 감나무를 심었는데 6.25때 일부가 타서 현재의 모습으로 되었다고 하며 박 대통령께서도 생가에 오시면 생가 관리인에게 이 감나무가 잘 자라도록 말씀 하셨다 함.

ParkPresident_070121_23.jpg

대선을 앞 두고 풍수가들은 대선 주자들에 대해 풍수에 입각한 전망들을 하고있다.

풍수에서는 그 사람의 先塋뿐만 아니라 태어난 곳의 풍수도 중요하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생가 뒤로는 산으로 둘러 쌓여 있어 양지 바르고 아늑한 느낌을 받았다.

집 뒤에는 대나무와 나무 숲으로 울창하다.

ParkPresident_070121_24.jpg

 

        

박대통령 생가를 떠나면서

 

대한민국 역사에서 박정희시대 만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한 시대가 있었을까하는 마음이 든다.

박 대통령 말기에 저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으며 당시 실업계 고등학교는 지금보다 훨씬 인기가 있었다.

왼쪽 어깨에 "조국 근대화의 기수" 라는 마크를 볼 때 마다 자부심으로 가득하였던 기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기술인이 우대를 받았던 시대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당시에 저희 고등학교를 방문 하셨을 적에 가까이서 뵌 적이 있지만 당차고 당당한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요즘은 대통령이 산업 현장이나 연구소를 시찰 했다는 뉴스를 본적이 없다.)

 

 

올 해 또 대선을 치른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 시대와 똑 같은 정치를 원하진 않는다.

다만 지도자의 리더십은 무엇이며 최빈민국에서 어떤 비전과 방법을 가지고 국가 발전을 이룩하였는지를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배워야 할 것이다.

"

개혁이란 말을 하지 않으며 조용히 改革을 하고,

말로만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비전을 제시하고 實踐하는 지도자,

갈갈이 찢어진 국민의 마음을 어루 만져주어 하나로 統合 할 수 있는 지도자.

아직도 배고픔을 느끼며 어떻게 하면 국민들이 잘 살 수 있을까? 고민하는 지도자.

헌법을 우습게 보지않고 遵守하는 지도자.

북한에 당당히 큰소리 할 수 있는 지도자.

이웃나라와 친하게 지내면서 自主를 할 수 있는 力量을 키워나가는 지도자.

"

이런 지도자가 다음 대통령이 된다면 후세의 역사가들은 박정희 대통령과 동등한 평가 내지는 그 이상으로 평가 하지 않을까.

또한 임기가 끝나기 전에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연임제 개헌을 하자고 하지 않을까?

 

ParkPresident_070121_28.jpg

출처 : 박정희 대통령 생가
글쓴이 : 키다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