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당시 우리나라는 먼 곳을 비행할 만한 비행기가 없던 탓에 서독정부가 빌려준 비행기로 박대통령은 서독 여정 길에 오른다. 그 비행기는 정기항로를 나는 여객기여서 여러 기착지에 착륙해야만 했다.
12월6일 밤 9시35분(한국시각 12월7일 새벽 1시15분) 출발 ⇒ 인도의 뉴델리 공항 ⇒ 파키스탄의 카라치 공항 ⇒ 이집트 카이로 ⇒ 이탈리아 로마 공항 ⇒ 서독의 프랑크푸르트 공항 ⇒ 본 공항 도착.
서울을 떠난 지 무려 28시간 여만에 도착한 것이었다.
뤼브케 대통령(70세)과 박대통령(47세) 의장대 사열 (서독 본 도착) ...........................................................................................................................................
1964년 12월10일 아침, 본에서 중요 일정을 모두 마친 박정희 대통령 일행은 뤼브케 대통령의 안내로 우리 광부들이 일하는 루르 지방으로 출발했다. 경찰기동대 사이카들이 선도하는 차량행렬은 라인강을 따라 아우토반을 달렸다.
오전 10시 40분, 박대통령이 탄 차가 루르지방의 함보른 탄광회사 강당에 도착했다.
인근 탄광에서 근무하는 광부 300여명, 뒤스부르크와 에센 간호학교에서 근무하는 간호원 50여명이
태극기를 들고 환영했다. 검은 탄가루에 찌들린 광부들이지만 모두 양복 차림이었고 격무에 시달린
간호원들도 색동 저고리를 곱게 차려입고 박대통령 일행에게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박대통령과 육영수는 서독 실정을 잘 알던 통역관 백영훈교수로부터 서독에 파견된 우리 광부와 간호원들이 초과근무를 자청, 몸이 부서져라 일해서 고향에 송금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차중에서 이미 들었던 터였다.
박대통령과 육영수는 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벌써 육영수 여사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간호원중에도 조국의 대통령 부부를 보아서인지 더러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박대통령 일행이 강당으로 들어가 대형 태극기가 걸린 단상에 오르자 광부들로 구성된 브라스 밴드가 애국가를 연주했다. 박대통령이 선창하면서 합창이 시작됐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한 소절 한 소절 불러감에 따라 애국가를 부르는 소리가 더 커져갔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이 대목부터 합창소리가 목멘 소리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광부와 간호원들에게는 떠나온 고향과 조국 산천이 눈앞에 스치고 지나갔을 것이다. 가난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젊은이들이 타국에 와 고생하는 현장을 본 박대통령의 음성도 변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마침내 마지막 소절인 "대한사람 대한으로......" 에서는 더 이상 가사가 들리지 않았다. 모두가 눈물을 쏟아냈다.밴드의 애국가 연주가 끝나자 박정희 대통령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코를 풀더니 연설을 시작했다.
"여러분. 만리타향에서 이렇게 상봉하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조국을 떠나 이역만리 남의 나라 땅 밑에서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서독 정부의 초청으로 여러 나라 사람들이 이곳에 와 일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한국사람들이 제일 잘하고 있다고 칭찬을 받고 있음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여기 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박대통령은 원고를 보지 않고 즉흥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광원 여러분, 간호원 여러분. 모국의 가족이나 고향 땅 생각에 괴로움이 많을 줄로 생각되지만
개개인이 무엇 때문에 이 먼 이국에 찾아왔던가를 명심하여 조국의 명예를 걸고 열심히 일합시다.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해 남들과 같은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닦아 놓읍시다…."
박대통령의 연설은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울음 소리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감정의 전이로 말미암아 박대통령 자신도 울고 말았다. 육영수 여사도, 수행원도, 심지어 단상옆에 서 있던 뤼브케 서독 대통령까지도 울었다.
결국 연설은 어느 대목에선가 완전히 중단되었고 강당안은 눈물바다가 되어 버렸다.
(행사도중 눈물을 닦으시는 육영수 여사)
박대통령은 참석한 광부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파고다 담배 500갑을 전달한 뒤 강당 밖으로 나왔다. 30분 예정으로 들렀던 광산회사에서 박대통령 일행이 강당 밖으로 나오는 데는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함보른 광산 회사측에서는 박대통령에게 한국인 광부가 지하 3000m에서 캐낸 석탄으로 만든 재떨이를 기념으로 선물했다. 박대통령과 육여사는 울어서 눈이 부어 시선을 바로 두지 못했다.
광부 기숙사를 둘러보고 차로 향하자 어느새 수백 명의 우리 광부들이 운집해 있었다.
몇 몇은 작업복 차림에 갓 막장에서 나와 검은 탄가루를 뒤집어 쓴 채였다.
박대통령 가까이 있던 광부들이 검은 손을 내밀었다.
"각하, 손 한번 쥐게 해 주세요." "우리를 두고 어떻게 그냥 떠나시렵니까?"
경호원들이 몰려드는 광부들을 제치고 박대통령 일행이 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었다.
대통령이 손을 흔들며 차에 오르자 광부들은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만세! 만세! 대한민국 만세! 대통령 각하, 안녕히 가십시오!"
박대통령의 차량은 뒤스부르크의 데마크 철강회사를 향해 아우토반에 올랐다.
박대통령은 차중에서 눈물을 멈추려 애쓰고 있었다. 나란히 앉은 뤼브케 대통령이 그 모습을 바라보더니 자기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칠순 노인인 뤼브케 대통령이 사십대 후반의 젊은 대통령의 눈물을 직접 닦아주었다. 그리고 우정어린 격려를 했다.
"울지 마십시오. 잘사는 나라를 만드십시오. 우리가 돕겠습니다.분단된 두 나라가 합심해서 경제부흥을 이룩합시다. 공산주의를 이기는 길은 경제 건설뿐입니다."
함께 탔던 백영훈 통역관도 울먹이며 겨우 통역을 마친 뒤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야 했다고 한다.
강당에 입장하시는 박대통령
광부들의 숙소 방문
에르하르트 수상과 회담(1964.12.9) 수상관저 (사진 가운데 분이 백영훈 통역관)
서독 간호학교 유학생 출발인사차 예방1(65.3.24) 청와대
서독 간호학교 유학생 출발인사차 예방2(65.3.24)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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