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정보♥

♣ 청송 방호정 ♣

그대는 모르리 2008. 8. 30. 15:11

청송 방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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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朝鮮) 광해군(光海君) 7년(1615) 창석(蒼石) 이준(李埈), 동계(東溪) 조형도(趙亨道), 풍애(楓崖) 권익(權翊), 방호(方壺) 조준도(趙遵道), 하음(河陰) 신집(申輯) 등이 학문을 강론(講論)하고 산수(山水)를 즐기던 곳으로 광해군(光海君) 11년(1619) 방호 조준도가 생모(生母) 권씨(權氏)의 묘가 바라보이는 이곳에 정자를 세우고 어머니를 생각하는 뜻에서 사친(思親) 또는 풍수당(風樹堂)이라 하였으며 순조(純祖) 27년(1827) 방대강당(方臺講堂) 4칸을 증축하였다 한다. 낙동면 상류변 절벽 위에 세운 이 건물은 ㄱ자형의 평면이며 측면은 팔작, 전면은 맞배지붕으로 되었다. 정자 안에는 방호문집(方壺文集)의 판각(板刻)이 보관되어 있으며 많은 제현(諸賢)들의 제영현판(題영懸板)이 걸려 있다. //

 

 

 

강력한 기운 풍기는 기막힌 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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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호정

 

방호정은 강 건너에서 바라보는 정경도 좋지만 방호정 마루에 앉아 길안천의 맑은 물을 내려다보는 풍류가 정말 일품입니다. 벼슬길을 마다하고 산중처사가 되어 학문에만 전념한 조준도의 호방한 기개가 담겨 있습니다.


청송군민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서울을 비롯한 외지인에게 “청송에 대하여 아는 것을 말해주세요” 하면 대다수가 “보호감호소밖에 모르는데요” 합니다. 청송이 외진 곳으로, 교통편이 나쁘고 산이 많아 외부인의 출입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물류비용 때문에 번듯한 공장 하나 들어서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청송군은 영양군과 함께 전국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손꼽혔습니다.

 

그러나 전화위복(轉禍爲福)이란 말이 있듯이 청송은 개발이 안된 덕택에 전국 최고의 웰빙 지역이 되었습니다. 산이 높으니 계곡도 많은데 굽이굽이 돌아 흐르는 여울을 따라 우뚝우뚝 솟은 이름 없는 바위 절벽은 하나같이 절경입니다. 아마 서울 같은 대도시 주변에 있었으면 모두 명승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청송은 ‘주5일 근무’시대에 가장 각광받는 휴양지가 될 것입니다. 또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손꼽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공장 설립을 자제하고 무분별한 난개발을 막아서 천혜의 자원을 최대한 보호해야 되겠지요.

 

산 좋고 물 맑은 곳이니 정자가 없을 수 없지요. 청송읍내 중심을 흐르는 용전천의 망미정(望美亭), 현서면 월정리의 침류정(枕流亭), 진보면 반변천의 풍호정 등 아름다운 정자가 있지만 안덕면의 방호정(方壺亭)은 정말 대단한 정자입니다.

 

방호정은 안덕면 신성리 진골 뒷산으로부터 뻗어내린 바위 줄기가 길안천으로 숨기 직전 깎아지른 절벽을 이룬 곳에 그림같이 앉아 있습니다. 산맥의 기는 바위를 타고 흐른답니다. 바위가 동물의 뼈처럼 골격이 되고 기의 통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전국의 정자 중에 암반 위에 지은 정자가 가장 많은 것은 기의 흐름을 알고 그것을 이용할 줄 알았던 선비가 많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가 강한 암반 위에 정자를 세우면 피로회복이 빠르고 머리가 맑아진답니다. 펜으로 그린 방호정 그림에서도 강한 기가 나온다는군요. 사실 대상물을 가는 펜으로 세밀하게 그리는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건축과 자연의 특성까지 제대로 표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학문 연구 겸하던 정자

 

방호정은 조선 광해군 11년(1619) 방호 조준도가 생모의 묘가 바라보이는 곳에 세웠습니다. 정자의 바닥모양은 ㄱ자형이나 절벽 쪽 온돌방 위로 맞배지붕을 내고 풍판을 달아서 지붕 모양은 丁자형입니다. 절벽 쪽에 마루방 2칸과 온돌방 한 칸, 뒤쪽에 부엌과 한 칸짜리 온돌방이 더 있습니다. 단순한 정자가 아니라 숙식을 겸한 공간이지요.

 

마루에는 절벽 위로 강하게 들이치는 비바람을 막기 위해 위에만 창호지를 바르고 아래는 판자로 막은 독특한 창문을 달았습니다. 다소 답답해 보입니다만 학문 연구를 겸하던 곳이라 필요할 때만 열어놓도록 하였을 것입니다. 정자 안에는 방호문집의 판각이 보관되어 있고 많은 이들이 쓴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순조 27년(1827)에 4칸짜리 방대강당을 증축하여 강학기능을 넓혔습니다.

 

방호정은 강 건너에서 바라보는 정경도 좋지만 방호정 마루에 앉아 길안천의 맑은 물을 내려다보는 풍류가 정말 일품입니다. 벼슬길을 마다하고 산중처사가 되어 학문에만 전념한 조준도의 호방한 기개가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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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석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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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호정 앞을 흐르는 길안천을 따라 돌아가면 강 건너편의 깎아지른 절벽이 강물에 아름다운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신성계곡(薪城溪谷)으로 병암(屛岩), 얼음골폭포, 현비암(賢妃岩)과 함께 청송이 자랑하는 절벽입니다. 강을 따라 3㎞쯤 들어가면 강바닥에 느닷없이 흰 기암괴석이 무리를 지어 돌출된 곳이 나옵니다.

 

백석탄(白石灘)이라는 이름처럼 하얀 돌이 알프스 연봉처럼 솟았는데 그 사이로 맑은 물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흐르는 광경은 참으로 장관입니다. 전국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특이한 풍경입니다. 백석탄 옆 마을은 아름다운 계곡에 세속을 초월한 사람이 은거하며 사는 마을이라 하여 고와리(高臥里)라는 고운 이름이 붙었습니다.

 

청송에는 산골마을답게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주왕산(周王山)이 그 위용을 자랑합니다. 수직으로 우뚝우뚝 솟은 봉우리들과 그 사이의 협곡에 가을 단풍이 들면 이국적인 풍광에 반한 전국의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특히 대전사(大典寺) 뒤편의 기암(旗岩)은 독특한 형태로 주왕산의 캐릭터로 쓰입니다. 해발 720m의 기암괴석 봉우리가 연출하는 천혜의 아름다움으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는데 옛날에는 석병산, 대둔산, 주방산 등으로 불렀답니다. 연화봉, 시루봉, 향로봉, 촛대봉 등 여러 봉우리 사이로 외주왕계곡, 내주왕계곡, 내원계곡이 있고, 네 곳의 폭포와 부암, 석병암, 신선암, 학소대 등이 장관을 이룹니다.


 

볼 만한 건축문화재로 진보향교(眞寶鄕校), 청송향교, 찬경루(讚慶樓), 만세루(萬歲樓), 평산신씨종택(平山申氏宗宅), 송소고택(松韶古宅), 후송당(后松堂), 금대정사(金臺精舍) 등이 있어 답사의 내용을 알차게 합니다.


 

그림ㆍ글ㆍ사진=김영택 펜화가(honginar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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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호정(方壺亭)에서
-------------------------------인산/조종래-


옥계수 흐르는 청산유곡에 두고온 그리움 흐르면
절경은 흔들리는 물위에 내려온다

시간이 쉬어간 흔적에 풀잎은 더욱 푸르러

바람이 정자의 풍광을 일깨울 때 물위에 떠있는 정자에 올라본다

수시로 울렁이는 굴렁다리에 올라 물에 갈아앉은 정자를 바라보면

설레는 마음이 저혼자 소(沼)깊이 헤엄을 치고,

백조가 느린 시간을 쪼으는 정자옆 고목에 매미몇이 추억을 노래하면
손짓하는 계절이 나뭇잎 편지를 쓰고 있다.

 

 

 

 

 

 

 

 

 

 

 

방호정

 

방호정

 

 


- Image #2 : 절골계곡01.jpg (136.9 KB)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맞이하여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청송으로 오세요.
간략히 사진찍을 만한곳을 올려드리겠습니다.

주왕산기암
천혜의 자연경관을 간직한 주왕산국립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우뚝솟은 기암바위가 먼저 눈에 보입니다. 이곳은 아마추어 사진작가분들이 전문적인 기술이 없어도 편안하게 사시사철 촬영할 수 있으며 가족사진, 연인사진, 풍경화 등 어느 각도에서 찍어도 아름다운 추억의 사진이 될것입니다.

대전사
주왕산국립공원 내에 있는 사찰로서 경내에 보광전, 명부전, 산령각이 있고 부속 암자로 백련암, 주왕암이 있습니다. 주로 사찰과 기암바위를 함께 배경으로 하여 많은 작가들이 사진촬영하는 곳입니다.

주왕산폭포
주왕산에는 제1폭포, 제2폭포, 제3폭포가 있습니다. 폭포마다 특색과 웅장하고 선녀탕이 있는가 하면, 주변 경관도 아름다워 폭포수와 함께 한컷....

주왕산의 학소대와 시루봉
전설이 어우러진 곳입니다.
주왕산은 웅장한 바위가 많아서 자연풍경도 좋고 인물 배경도 멋진 곳입니다.

절골계곡
부동면 이전리에 위치한 절골계곡은 아직까지 때묻지 않은 태고의 비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계곡내에 모든 경관이 아름다워 전 구간이 사진촬영 하기에 멋진 곳입니다.

주산지
주산지는 청송의 대표적인 최고의 사진촬영 장소입니다.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의 영화 촬영지로서 주산지는 한폭의 그림과도 같아 전국의 사진 작가분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입니다. 특히 5월초·중순경 새벽 물안개 피는 장면은 자연의 극치이며 물속에 잠긴 왕버드나무의 신비와 함께 사시사철 사진촬영에 적합한 곳입니다.

얼음골
청송군 부동면 항리에 위치한 얼음골은 62m 높이의 탕건봉에 인공폭포를 설치하여 여름에는 시원한 폭포로, 겨울에는 전국빙벽대회가 열리는 곳입니다. 이곳은 주변경관과 얼음골의 약수, 한여름에도 얼음이 어는 곳으로 특히 탕건봉을 배경으로 겨울빙벽 촬영은 한폭의 그림입니다.

백석탄
안덕면 고와리에 위치한 백석탄은 알프스 산맥의 미니 암봉같은 바위군이 여러군데 있습니다. 이곳은 장마이후 맑은 물과 바위가 어우러져 풍경과 인물사진 촬영에 좋으며 자연적으로 이상하게 생긴 바위도 있습니다.

방호정·신성계곡
조선 광해군 11년 방호 조준도 공이, 모친의 묘를 늘 바라볼수 있는 절경의 터를 골라 건립하였다고 한다. 순조 27년 방대강당 4칸을 증축하여, 산림처사로 은거하면서 학문탐구에만 전념하던 곳이며, 빼어난 절경과 맑은 물, 그리고 소나무 숲을 자랑하는 신성계곡은 높은 암산에서 날아갈 듯한 방호정에서 설산이 연상되는 백석탄에 이르는 계곡 전체가 한폭의 그림같은 아름다운 곳입니다.

현비암과 섶다리
청송읍 소재지 용전천에 위치해 있는 기암절벽으로 두쌍의 인공폭포가 설치되어 여름철 시원한 밤을 보내기에 적합한 곳입니다. 특히 이곳은 MBC 9시뉴스 영상으로 방영되었으며 섶다리가 설치되어 있어서 옛추억의 사진촬영이 좋은 곳입니다.

달기폭포
11m 높이의 달기폭포는 청송읍 월외리에 속해 있어 ‘월외폭포’ 라고도 불린다. 주왕산 제1폭포가 여성적인 폭포라면 달기폭포는 남성적인 폭포라 할 수 있다. 용이 승천하였다는 전설이 있는 폭포 아래의 용소는 명주실 한 꾸러미를 다 풀어도 바닥에 닿지 않을 정도로 깊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목개솔밭
파천면 송강리에 위치한 목개솔밭은 수령 200여년의 소나무 80여그루가 자생하고 있습니다.
청송의 상징은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이며 산림욕과 솔향기를 맡으며 추억의 사진 한판 찍으세요.

송소고택
조선 영조때 만석의 부를 누린 청송심씨의 7대손 송소 심호택이 1880년경 호박골에서 조상의 본거지인 덕천리로 이거하면서 건축한 고가이다. 전체적인 평면은 □자형으로 솟을 대문과 행랑채 우사, 곳간이 있으며 살림공간, 휴식공간, 작업및생산 공간을 별도로 두어 안방생활의 구분을 뚜렷이 한 전통적인 양반가의 건축형식입니다. 99칸의 주거용 가옥인 송소고택은 전통민속놀이를 겸한 체험숙박이 가능하며 옛사진 촬영에 좋은 곳입니다.

청송양수발전소
청송양수발전소의 상부댐은 노래산(795m) 꼭대기에, 하부댐은 안덕면 노래리에 만들어 두 댐은 1,863m의 방수로 터널로 이어져 낮 시간대에는 하부댐의 물을 퍼 올린뒤 밤 시간대에 345m의 낙차를 이용해 발전하는 곳으로 상부댐으로 오르는 구불구불 산길따라 곳곳에 숨은 비경이 있으며 하부댐인 청송호는 댐규모가 크고 편의시설과 볼거리가 많아 가족 테마사진 여행지로 손색이없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청송군청 홈페이지
www.cs.go.kr 에 자세히 소개되어있습니다.


 

청송 신성계곡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薪城里)에 있는 계곡으로 초입의 바위 절벽 위에 자리잡은 방호정(方壺亭:경북 민속자료 51)부터 인근 고와리의 백석탄계곡(白石灘溪谷)까지 이르는 15㎞ 구간을 말하며,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은 낙동강의 상류를 이룬다.

가까이 있는 주왕산(周王山:721m)에 비해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청송8경(현비암·달기폭포·얼음골·월매계곡·신성계곡·절골·주왕산·수정사계곡) 가운데 제1경으로 지정될 정도로 경치가 빼어나다. 방호정은 1619년(광해군 11) 9월 조선 중기의 학자 조준도(趙遵道:1576∼1665)가 44세 때 돌아가신 어머니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지은 정자로, 1827년(순조 27) 조씨 문중에서 증축하였다.
   
계곡의 하류 지역에는 갖가지 기암절벽이 솟아 있고, 차고 맑은 물과 깨끗하고 넓은 자갈밭, 울창한 소나무숲, 야영장을 갖추고 있어, 백석탄계곡과 함께 하절기 가족 휴양지나 단체 회합 장소로 인기 있다.


관련기사
"산 깊고 물 맑은 청송 8경 중 으뜸이라"청송 신성계곡 [한국일보]
기암절벽 이어지는 9km 물길, 가족단위 피서객 많아




낙동정맥 분수령을 끼고 터를 잡은 경북 청송(靑松)은 비교적 깊은 산악지대를 이루고 있는 오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소헌왕후의 본향이므로 일찍이 현(縣)을 올려서 군(郡)으로 하였으나, 땅이 구석지고 으슥하여 사신이 오는 일이 드물다’고 기록할 정도니 청송이 얼마나 외진 곳이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래도 요즘엔 도로가 잘 나있고, 주왕산(721m)과 주산지, 달기약수 등이 널리 알려져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은 편이다.

신성계곡을 빛내는 방호정의 아름다움
주왕산 자락은 아니지만 청송 서남부의 안덕면 길안천(吉安川) 주변에도 절경이 많다. 신성교 앞에서 백석탄까지 이어지는 9km 정도 물줄기 주변으로 기암절벽이 연이어져 있어 눈을 즐겁게 한다.
또한 차고 맑은 물속엔 피라미, 모래무지, 꺽지 같은 민물고기와 다슬기가 서식하고, 강변엔 야영할 만한 모래톱과 자갈밭, 울창한 숲이 곳곳에 펼쳐져 있어 가족의 여름 나들이 장소로 아주 적합하다.

청송 주민들은 이 주변을 따로 ‘신성계곡’이라 하는데, 청송8경의 제1경으로 지정될 정도로 풍치가 아름답다.
신성계곡은 길안천 벼랑과 어우러진 경치가 빼어난 방호정(方壺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정자 주변엔 아름드리 느티나무들이 짙은 숲을 이루고 있어 야영생활을 하기에 적합하다. 가족과 안전하게 천렵을 즐길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방호정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방호(方壺) 조준도(趙遵道, 1576~1665)가 44세의 나이로 돌아가신 어머니 안동 권씨를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1619년(광해군 11) 어머니의 묘가 보이는 이곳에 세웠다고 전한다. 처음엔 사친당(思親堂)이라 했다 하니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는 조준도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알 수 있다.
정자의 바닥모양은 ㄱ자형이나 강물에 접한 절벽쪽 온돌방 위로 맞배지붕을 내고 풍판을 달아서 지붕 모양은 丁자형이다. 절벽 쪽에 마루방 2칸과 온돌방 한 칸, 뒤쪽에 부엌과 한 칸짜리 온돌방이 더 있다. 이는 방호정이 단순한 정자가 아니라 숙식을 겸한 공간임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선 이준·조형도·권익·신집 등의 학자들이 모여 학문을 논하고 산수를 즐겼다. 정자 안엔 <방호문집>의 판각이 보관되어 있다.

이 정자를 경영했던 조준도의 효심과 더불어 돋보이는 것은 정자의 위치라 할 수 있다. 신성리 진골 뒷산으로부터 뻗어 내린 산줄기가 길안천으로 잦아들기 직전 힘을 모아 빚은 바위벼랑 위에 앉은 정자는 제법 품위가 있다. 사행천을 굽이돌아 가는 물줄기가 아랫도리를 휘감고 지나는데 바위 아래 곳곳에 제법 깊은 소(沼)도 있으니 주변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다.

일찍이 이곳에 들렀던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은 ‘산골짝은 첩첩이 겹쳤는데/시냇물은 몇 굽이를 흐르느냐/외딴 마을은 골짝 어귀에 있고/높은 정자는 바위머리에 솟았다’고 노래했다.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주변의 상가와 방대교라는 큼직한 다리가 방호정의 풍치를 방해하지 않았다면 가히 부족함이 없는 절경이었을 것이다.

물놀이, 낚시, 다슬기잡이의 천국
방호정에서 물줄기를 따라 백석탄까지 따라가다 보면 물가 주변에 가족과 안전하게 물놀이할 곳이 많다. 곳곳엔 낚시 포인트도 지천이고, 다슬기도 실컷 잡을 수 있다.

하류 고와리에 있는 백석탄(白石灘)은 새하얗게 빛나는 바윗돌이 눈길을 끈다. ‘하얀 돌이 반짝거리는 내’라는 이름 그대로 냇가엔 수천, 수만 년간의 시간이 깎고 다듬은 흰 바위들이 깔려 있다.
15~20m 폭의 길안천 기반암에 형성된 백석탄은 지질학적으론 포트홀(pot hole)을 일컫는다. 이는 오랜 세월 흐르는 물로 인해 하천 암반에 생긴 깊은 구멍을 일컫는 용어. 고와리라는 지명은 이곳의 풍치가 아름다워 ‘와 이리 고운가'라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약어대(約魚臺) 밑으로는 가사연(歌詞淵)이 있어 옛 시인들이 이곳에서 고기를 낚으면서 산자수명함을 노래했다고 한다. 백석탄을 팔경으로 노래한 한시도 전한다.

또한 임진왜란 때인 1593년(선조 26) 고두곡이란 장수가 전쟁터에서 부하를 잃고 이곳을 지나다가 경관에 취해 한동안 마음의 상처를 달랬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백석탄 계곡 언덕 위엔 장군대가 있는데, 김한룡이라는 사람이 조선 인조 때 이곳에 머물 당시 병자호란 때 순절한 부친인 김몽화 장수의 갑옷과 투구를 이곳에 묻었다는 곳이다.

교통
수도권→ 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 중앙고속도로(대구 방면)→ 의성 나들목→ 5번 국도→ 의성→ 912번 지방도→ 현서→ 안덕→ 방호정→ 신성계곡.
수도권에서 4시간, 광주에서 4시간30분, 부산에서 3시간 소요.

숙식
부남면 대전리 31번 국도 상의 삼자현 고갯마루 북쪽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는 청송 자연휴양림(054-872-3163)은 안전하고 편안하게 숲 체험을 할 수 있는 곳. 원두막형 야영데크(5,000원)는 비가 올 때도 쾌적한 야영생활을 즐길 수 있다.
산막 사용료는 3만5,000~6만원. 방호정 주변에 방호정식당(054-872-0528), 신성식당(054-872-6298) 등 숙식할 곳이 몇 집 있다. 주로 닭백숙(3만원)과 매운탕(3만원) 등을 차리는데 민박도 같이 친다.
여름 성수기 주말엔 작은 방이 4만원 수준. 방호정에서 백석탄까지 경치는 좋으나 숙식할 곳은 그리 마땅치 않은 편이다. 청송군청 문화관광과 (054) 870-6230, 안덕면사무소 (054) 872-0005.

내용출처 : 본인작성

경상북도 내륙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청송은 예로부터 오지 중의 오지로 불려 왔다. 거리상으로도 멀고 이용할 수 있는 교통편도 불편한 데다가 워낙에 첩첩한 산과 울울창창한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체 면적 가운데 82%가 산지일 만큼 청송은 '산투성이'다. 그런데 청송의 산들은 우리 산하에서 흔히 보는 둥글둥글한 산이 아닌 참으로 기기묘묘한 형태를 하고 있어 처음 맞닥뜨린 사람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한다. 약 7천만 년 전 폭발한 화산에서 흘러내린 화산재가 이런 걸작품을 만들어 놓았다고 하는데 그 걸작품을 한데 모아놓은 곳이 바로 '청송답사 일번지' 라 할 수 있는 주왕산이다.


기암괴석과 전설 가득한 주왕산

주왕산을 오르다보면 주왕산의 옛이름 석병산(石竝山)이 과연 허투루 붙인 이름이 아니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바위를 병풍처럼 둘러세웠다는 그 말 뜻대로 도처에서 나타나는 깍아지른 벼랑과 봉우리들이 마치 난공 불락의 요새와 같다. 그래서인지 주왕산은 예부터 전쟁에 져 쫓기던 장수의 도피처로, 벼슬을 버린 양반들의 은둔처로, 또 도인들이 도를 닦던 수도의 장으로 이용되곤 했다.

주왕산이란 이름은 신라 선덕왕 때 김주원이란 사람이 임금 자리를 버리고 이 산에 들어와 수도를 했기 때문에 붙여졌다고도 한다. 또한 고려초 중국에서 당나라에 반기를 들었던 진(普)의 후손 후주천왕(後周天王)이 당나라 군사에게 쫓겨 이곳에서 웅거하다 고려군 마일성 장군 형제에게 잡혀 일생을 마쳐 그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라고도 한다.

주왕산 곳곳의 바위나 굴, 골짜기 등에는 주왕의 사연 있지 않은 곳이 드물어 주왕산을 돌아보는 것은 전설을 답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정도이다.

주왕산의 등반은 대전사에서부터 시작된다. 최치원, 나옹화상, 도선국사, 무학대사, 서거정, 김종직 같은 수많은 고승과 학자들이 머물며 수도를 한 곳으로 유명하며,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는 이곳에서 승병들을 모아 훈련시켰다고 한다.

대전사를 지나면서부터 기암, 주왕산성, 주왕암이 나오고, 누구도 발견 못하리라 방심한 주왕이 세수를 하러 나왔다가 마일성 장군의 철퇴에 맞아 죽었다는 전설이 있는 주왕굴, 주왕의 군사들이 갑옷과 무기를 숨겨두었다는 무장굴을 만날 수 있다.

학이 노닐었다는 학소대에 이르면 주왕산 최고의 절경으로 손꼽는 시루봉, 병풍바위, 신선바위가 마치 서로 키를 재듯 연이어 버티고서 있다.

이 곳을 넘어서면 주왕산이 품고 있는 시원스런 3개의 폭포가 차례로 나와 등산객들의 더위를 가시게 해준다. 제3폭포를 지나면 아직까지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우리나라 최고의 오지 마을 중의 하나인 내원마을이 나오는데 반드시 들러 볼 만 하다.


하늘과 나무를 담은 못, 주산지

주왕산 매표소에서 10여km 떨어진 인전리를 지나 역시 주왕산 자락인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전혀 뜻밖의 거대한 저수지인 주산지가 나온다. 6천 평 크기의 이 못은 1720년 이공(李 公)이 하류의 가뭄을 해소하기 위해 계곡을 막아 땅을 파고 뚝을 쌓아 농업용 저수지로 만든 것이다. 인적 없는 깊은 산과 나무, 새소리와 어우러진 저수지의 풍경이 신비롭기 그지없다. 물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왕버드나무의 자태도 아름답지만 바람이 잔잔한 날 못에 비치는 물그림자의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안덕면 신성리에서부터 고와리까지 펼쳐지는 계곡 역시 뛰어난 절경으로 일반인들에겐 그리 알려져 있지 않아 호젓하게 자연을 즐기기에 적격인 곳이다.

신성계곡 초입의 방호정에서부터 시작하여 절묘하게 이루어진 신성계곡을 따라 돌아가면 '와 이리 고운가' 에서 유래했다는 고와리의 백석탄과 만난다. '하얀돌이 반짝거리는 때' 라는 뜻의 이곳엔 말 그대로 오랜 세월 물과 바람에 깎인 하얀 바위들이 강바닥 위에 무리져 솟아 있다.

청송은 어디를 가든 깊은 산과 계곡이 쉽없이 펼쳐지는 원시성의 매력이 사람을 깊게 빠져들게 한다.


주왕산 내원마을과 사슴할아버지

주왕산 내원마을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그야말로 산간 오지마을이다. 주민이라곤 6가구에 12명뿐. 아직도 아궁이에 불을 때 밥을 짓고 밤에는 호롱불을 밝힌다. 대처 사람들에겐 이런 비문명이 매력의 요소여서 적잖은 사람이 찾아와 민박을 청하곤 한다. 청송군은 국립공원의 훼손을 이유로 전기 공급은 물론 집의 신축도 금하고 있지만 제2폭포까지 올라와 있는 매점엔 전기를 주고 정작 생활을 하는 주민들에겐 전기를 주지 않아 주민들이 깊은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이 마을엔 주왕산의 유명한 지킴이 '사슴할어버지' 권영도 씨(65)가 산다. 도자기를 굽고 동산객들에게 차를 제공하는 사슴할아버지는 삶에 지친 도시 사람들에게 힘을 불어 넣어 주는 '카운셀러' 역할도 자처하며, 환갑이 넘는 나이에도 산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어 등집을 지고 산 아래에까지 나르는 등 주왕산 환경정화에 앞장서고 있다. 사슴할아버지는 앞으로 내원마을을 '꽃마을'로 만들고자 마을 사람들과 힘을 모아 입구에서부터 코스모스 등을 심는 등 꽃마을 꾸미기 작업에 한창이다.


숙식
주왕산 입구에 여관이 많다. 내원마을에서도 민박을 할 수 있다. 청송의 명물 중 하나인 달기 약수터에 가면 달기약수에 닭과 녹두, 찹쌀을 넣어 만든 약물 백숙이 먹을 만하다.

내용출처 : http://www.tourskorea.com/

 

 

매실액 담그는 방법

요즘 매실이 제철입니다.
매실을 구입하는 분들이 부쩍 늘었는데요.

매실을 구입하는 이유는 매실액과 술을 담그기 위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처음 매실액을 담그시는 분들께서는 실패를 많이 하시는데요.

자농몰에서 매실을 판매하시는 방호정(산중)님에게 매실액 담그는 법에 대한
비결을 듣고 정리해 봅니다.

첫째 중요한 것은 매실인데요.
일단 농약을 주지 않은 매실을 구입하셔야 합니다.

두 번째는 설탕을 구입해야 하는데요.
설탕은 흰 설탕보다는 황 설탕이 좋다고 합니다.
흑설탕도 좋지만 흑설탕의 경우엔 매실 고유의 향이 줄어든다고 하네요.

그럼 이제 매실과 설탕을 같은 양을 옹기나 유리병에 넣는데 이때 위에 빈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3분의 2정도 담고 위에는 빈 공간이면 좋습니다.
그리고 뚜껑을 덮습니다.
뚜껑은 숨을 쉴 수 있는 한지나 종이로 덮고 고무줄로 묶어 두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그늘진 곳에 2개월 정도 숙성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두면 대부분 실패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처음 매실을 담그고 10일 후에 항아리 아랫부분에 설탕을 손으로 퍼 올려
잘 녹여 주어야 합니다.
즉 위아래 휘저어서 섞어야 합니다.
이런 작업을 20일 후에 한번 40일 후에 한 번 정도 하시면 실패 없이 좋은 매실액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즉 설탕을 완벽하게 녹여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섞어 주지 않으면 위 부분부터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그 다음에 매실액만 분리해서 다른 용기에 담고 매실 양의 2배로 하여 소주를 담그시면 됩니다.
소주를 너무 많이 넣으면 맛이 약해집니다.

보통 10kg의 생매실과 설탕 10kg으로 매실액을 담그면 매실액 12kg정도가 나옵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매실 중에 우리나라 토종매실이 매실 액을 만들 때는 더 좋다고 합니다.

매실액 이리 저리 쓸모가 많은 것은 아시죠.
가족들과 함께 매실액 한 번 만들어 보세요.

 

 

청송 얼음골 폭염 피서지로 각광!
“너무 차서 20초 이상 있을 수가 없어요.”



청송군 얼음골이 요즈음 폭염 날씨 속에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을 받아 화제가 되고 있다.

 


부동면 내룡리에 위치한 얼음골은 지난 6월 중순 첫얼음이 얼어 화제가 된바 있고, 날씨가 무더울수록 얼음이 어는 얼음골은 시원한 골바람과 함께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시원한 곳으로, 명물인 약수터는 구리봉산 얼음이 어는 지점과 같은 줄기에 위치하고 있어 바위틈 사이로 골바람이 나와 시원하고 물맛이 일품이다.


약수터의 물은 너무 차가워 손을 담그면 보통사람은 20초 이내에 견디기 힘들 정도로 차가우며, 물이 너무 좋아 포항, 영덕, 울산, 경주 등 인근지역에서 매일 물을 뜨러 장사진을 이루고 있고, 물맛이 좋아 오랫동안 두어도 물의 변질이 없어 수십 년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 얼음골내 탕건봉은 62m의 인공폭포로서 여름철에는 시원한 폭포로 사용하고 겨울철에는 빙벽훈련장으로 매년 전국빙벽대회가 열리는 등 주변 경관과 함께 시원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얼음골의 야영장은 밤에 이불을 덮을 정도로 추우며, 이곳에는 새마을문고 청송군지부에서 피서지새마을문고를 운영하여 피서객의 무료함을 달래준다.

 

*경산북도 민속자료 제51호
*소재지 : 경산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 181

 

  이 건물은 조선 광해군(光海君) 7년(1615)에 지어진 것으로 창석(蒼石) 이준(李俊), 동계(東溪) 조형도(趙亨道), 풍애(風崖) 권익(權翊), 방호(方壺) 조준도(趙遵道), 하음(河陰) 신집(申輯) 등이 학문을 강론하고 산수를 즐기던 곳이다.
  동왕 11년(1619) 방호 조준도가 생모 권씨의 묘가 바라보이는 이 곳에 정자를 세우고 어머니를 생각하는 뜻에서 사친(思親) 또는 풍수당(風樹堂)이라 했으며, 순조(純祖) 27년(1827) 방대강당을 새로 고쳐지었다.
  정자 안에는 '방호문집'의 판각이 보관되어 있으며 많은 제현들의 제영현판이 걸려 있다. 조선중기 건축으로 주면 경관과 잘 어울리는 섬세한 구조기법이 변형없이 잘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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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년 전에 세워진 청송의 절경 방호정 경관


방호정 안내문


방호정교와 방호정(1955 초등학교 시절 소풍이라면 주로 방호정엘 갔습니다.

언덕위에 자리한 아름다운 방호정

길안천으로 곧 낙하할듯한 정겹고 아담한 방호정


옛 선비들이 공부했던 방호강당, 그 시절 토론의 소리는 역사속으로 흘러갔습니다.


방호강당의 숙소


천문대가 있는 보현산에서 흘러온 물이 방호정교 밑을 흘러

안동 임하댐으로 흘러가는 회돌이치는 길안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