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아래 첫 산사 지리산 법계사 ▲ 지리산 계곡에 가을은 이미 와 있었다. 고도에 따라 줄을 세운 듯 늦여름과 초겨울까지 차례로 채비를 하고 있었다. ⓒ2003 임윤수 이러쿵저러쿵 벌어지고 있는 세상 만사를 법계의 기준으로 보면 어떻게 생각될까? 무한 경쟁의 늪이며 돈과 권력이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는 아수라의 세상이 속계다.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해 고뇌하며 몸부림치고 올가미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 모르고 상대방 애간장 다 녹이고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악담과 시기가 성성한 곳이 속계다. 돈과 권력을 움켜잡아 한바탕 떵떵거리며 살기 위해 권모술수와 사기 그리고 계략과 정략적 이합집산이 판치는 우리들의 삶이 펼치는 마당, 숨쉬기조차 곤란하도록 비좁고 야박한 세상이 바로 속계가 아닌가 모르겠다. 잠들고 병든 날, 걱정, 근심에 속고 속이려 발버둥치며 보내는 시간 다 빼고 나면 채 40년도 안 되는 짧은 삶을 살아가는 속계의 우리들이 별별 수단 다 동원하고, 있는 지혜 없는 지혜 다 짜내며 야단법석을 떨지만 법계의 기준으로 보면 아주 하찮은 어린아이 투정이나 미물들의 꿈틀거림쯤으로 생각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법계란 질곡의 곡해를 넘고, 깨달음으로 광명의 빛이 비추며 생로병사의 고뇌도 사라지고 시기와 질투가 존재하지 않는 크고 넓은 마음이 상생하는 곳이라고 생각된다. 천년이 될지 만년이 될지 모르는 무한의 깊이를 가진 곳이라고 한다. ▲ 법계사로 오르는 길은 참 예쁘다. 동글동글한 바위가 가지런히 깔리고 초록의 산죽잎들이 융단처럼 펼쳐져 있다. 머리 위로는 형형색색의 단풍이 치장되어 있으니 법계를 찾아가는 발걸음이 즐거울 뿐이다. 어릴 때 사물의 크고 작음과 많고 적음을 나타낼 때 '눈꼽만큼, 손톱만큼 그리고 하늘땡땡만큼'이란 표현을 쓴 기억이 있고 지금도 가끔 아이들에겐 그런 표현을 쓴다. 서너 살짜리 아이들이 하는 소꿉놀이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귀엽다는 생각과 함께 그들이 하는 행동이 참 어리숙하고 현명치 못하다는 것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비단 보고 있는 아이들의 소꿉놀이뿐 아니라 지나온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자신의 모습에 그런 것이 한 둘이 아니다. 사춘기 때 죽고 싶도록 힘들고 괴로웠던 진학 문제나 이성 문제도 지나고 보니 별 것 아닌 어리석음과 집착 때문이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보는 눈이 높아지고 넓어졌기 때문에 작은 어리석음을 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당장 번민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도 좀 더 높고 넓은 차원에서 바라보면 분명한 해답이 있고 그 번민 자체가 가소로운 것임을 알텐데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 이게 바로 인간의 한계인가 보다. 그래도 가끔 위안이 되는 것은 소위 내로라 하는 정치꾼들의 어리석음도 범인(凡人)의 어리석음 못지않다는 것이다. 작금의 SK 비자금 문제가 정치꾼들과 그 집단의 어리석음을 짐작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아닌가 생각된다. ▲ 속계와 법계의 경계를 알리는 일주문이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법계와 속계의 경계는 결국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 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어리석음을 너무 버젓이 자행하고 있는 그들의 뻔뻔스러움이 실소를 금하지 못하게 한다. 금세 들어날, '단 1원도 받은 적이 없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너무도 당당하게 하던 그때 그 사람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하는 연민이 생긴다. 단 며칠도 버티지 못한 거짓이 자백으로 깨져야 했을 때 그 사람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외면하고 짓밟고 감추려 해도 진실은 생물처럼 꿈틀대며 언젠가는 그 모습이 드러난다는 작은 교훈이라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긴다. 몰염치하다 못해 파렴치하게 생각되는 정치꾼들의 어리석은 정치 놀음이 살아오면서 복습하듯 저질렀던 필자의 어리석음을 자위하게 해 준다. 패거리로 우르르 몰려가 탄압이니 뭐니 하더니 지금은 꿀 먹은 벙어리 마냥 함구하고 있는 꼬락서니에서 비겁과 아부의 미련함이 보인다. 하늘땡땡만큼 큰 금액을 눈꼽 취급하듯 시치미를 뚝 떼었던 그 사람들 양식엔 무엇이 들었을까? 그 사람들은 하늘땡땡만큼 큰 법계의 진리와 눈꼽만큼 한 속계의 작은 양심을 알기나 할까? 뒤숭숭한 이런저런 생각을 차곡차곡 접으며 한 발 두발 걷다보니 우리나라 하늘 아래 첫 산사인 법계사로 들어서게 된다. ▲ 연기(緣起) 조사가 전국을 두루 다녀본 후 천하의 승지(勝地)라 하여 터를 잡은 이곳은 용이 사리고 범이 웅크린 듯한 산세로 좌우로 급박하게 짜여져서 오직 동남쪽으로만 트여있으니 동틈과 함께 지기와 천기가 조화를 이루며 화합하는 곳이다. 해발 1915m나 되는 지리산엔 늦여름부터 초겨울까지 색깔이 고도에 따라 줄을 맞춘 듯 분명하다. 설악산이 좀 더 기상적이며 강한 인상을 준다면 지리산에선 웅장하지만 유순하며 완만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받게 된다. 지리산 천왕봉 동쪽 해발 1450m 지점엔 우리 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법계사가 있다. 그러니 법계사는 하늘 아래 첫 산사인 셈이다. 법계사를 가는 길은 사람들이 말하는, 지리산 오르는 코스 중 중산리 코스를 따르면 된다. 중산간 마을쯤으로 생각해도 좋을 만큼 높은 고도에 자리한 중산리 매표소에서 법계사까지는 총총걸음으로 2∼3시간은 걸어야 한다. 지리산 자연 학습원에서 법계사로 오르는 길은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동글동글한 돌들이 가지런하게 깔려 있고 푸른 산죽들이 융단처럼 펼쳐져 있다. 설렘에 울렁거리는 마음처럼 흔들리는 쇠줄다리 아래로 단풍잎이 곱께 깔려 있다. 흙 한줌 밟지 않고도 법계사엘 갈 수 있을 만큼 오르는 길은 내내 바위에 돌덩어리다. 아직은 울퉁불퉁하고 앙칼진 면이 남아있는 돌들도 있지만 대개는 둥글둥글하고 반질거리기조차 한다. 그렇다고 법계사에 오르는 길이 만만한 길은 아니다. 끊이지 않는 경사와 울퉁불퉁한 바위길이니 항시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 억새를 지붕으로 이은 일자 형태의 초가는 오는 겨울의 삭풍을 견디기 위한 방편으로 문에는 투명하지만 두툼한 비닐이 덧대어 있다. 고개 들어 하늘과 산 위로 내려오는 겨울색에 인사하며 눈길을 옆으로 주니 파란 산죽을 깔고 잎새 떨군 나무들이 '나 추워, 나 추워' 하는 듯 바람에 흔들린다. 가을 곡식 잘 영글라고 참아준 하늘 때문인지 계곡은 목말라 있다. 두런두런 주변 살피며 휘적휘적 걷다보니 로터리 산장이 나온다. 산장앞에 세워진 이정표를 보니 이곳이 해발 1450m라고 되어 있다. 법계사는 이정표에서 어림잡아 고도 20m쯤은 더 올라가야 있으니 1470m쯤에 자리한다고 하면 정확할 듯하다. 법계사는 544년(신라 진흥왕 5년) 연기(緣起) 조사가 전국을 두루 다녀 본 후 천하의 승지(勝地)가 이곳이라 하여 천왕봉에서 약 4㎞ 떨어진 현재의 터에 법계사를 창건하였다 한다. 용이 사리고 범이 웅크린 듯한 산세는 좌우로 급박하게 짜여져서 오직 동남쪽으로만 트여있으니 동틈과 함께 지기와 천기가 조화를 이루며 화합하는 곳이다. 고려 우왕 6년인 1380년, 이성계에 패배한 왜군에 의해 소실된 법계사는 조선 시대 태종 즉위 5년인 1405년에 정심(正心) 선사가 중창했으나, 1908년 일본군에 의해 다시 소실되어 방치되다 1981년 겨우 절다운 형태를 갖추었다고 한다. ▲ 커다란 자연 암석을 기단 삼아 물끄러미 속계를 바라보고 있는 삼층석탑. 법계사에는 보물 473호로 지정된 3층 석탑이 있다. 이 석탑은 부처님 진신 사리가 봉안된 탑으로 이 탑과 적멸보궁 앞쪽에 있는 산의 커다란 바위는 일본의 후지산과 일직선상에 놓여있다고 한다. 이러한 지정학적 배치를 고증이라도 하듯 일본과의 미묘한 관계가 구전되고 있다. 예로부터 '법계사가 일어나면 일본이 망하고, 일본이 일어나면 법계사가 망한다'고 하여 여러 차례 왜적이 법계사를 침범하였다고 한다. 고려 때 왜적 아지발도(阿只拔屠)가 이 절에 불을 지르고 운봉 전쟁에서 이성계의 활에 맞아 죽은 일화는 바로 구전이 허위만이 아님을 반증하고 있다. 법계의 영역임을 알리는 "智異山法界寺"란 글씨가 붙어 있는 철제 기둥의 일주문이 조금은 궁상맞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바람에 쓰러진 나무로라도 장승을 세우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3년 전부터 법계사에 주석하며 불사월력을 세워 많은 전각을 중건하신 주지 진욱(眞旭) 스님께서도 일주문에 대해서 많이 안타까워 하셨다. 원래 법계사에는 별도의 일주문이 없었다고 한다. 야간 등산이 허용되던 때 일부 등산객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법계사로 들어와 고성방가를 일삼는 것은 물론 훼불(毁佛)의 위험성이 있어 부득불 만들 수밖에 없었던 시설이라고 하신다. 여력이 되고 기회가 되면 산세를 해치지 않고 세웠지만 세워지지 않은 듯 환경에 거슬리지 않는 소담한 일주문을 세우고 싶다고 하신다. ▲ 여느 적멸보궁과 같이 이곳에도 불상은 모셔져 있지 않다. 창문을 통하여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삼층석탑이 보인다. 일주문을 들어서 굽어진 계단길을 들어서니 종무소와 공양간을 겸한 한옥이 나온다. 이 건물 왼쪽 커다란 암반을 돌아가면 그곳에 적멸보궁이 있다. 여느 적멸보궁처럼 전각은 있으되 모셔진 불상이 없는 이곳에선 부처님 진신 사리가 봉안된 뒤쪽 삼층 석탑을 향하여 예를 올릴 수 있게 되어 있다. 적멸보궁을 나와 계단을 따라 산쪽으로 오르니 한껏 햇살 좋을 듯한 곳에 태양 에너지를 유용한 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한 집광판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이곳에선 이 집광판에서 얻는 에너지를 전기로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햇살이 좋아야 얻어지는 전기가 많기 때문에 구름이라도 끼는 날에는 최소한의 조명만을 남기는 절전이 생활의 일부분이라 하신다. 몇 걸음 더 올라서니 억새를 지붕으로 이은 일자 형태의 초가가 한 채 있다. 오는 겨울의 삭풍을 견디기 위한 방편으로 문에는 투명하지만 두툼한 비닐이 덧대어 있다. 한 겨울 아랫목 뜨끈한 이곳에서 수북하게 쌓인 설경을 보게 된다면 가히 장관일 듯싶다. 초가를 보니 화로가 생각나고 군고구마와 토닥거려주던 할머니의 손길이 생각난다. 초가에서 쉬고 싶다는 미련 거두고 다시 몇 걸음 옮기니 좌측으로 지반 전체를 이루고 있는 너럭바위 암반 위에 둥글고 커다란 바위가 두 개 있고 그중 한 개의 암반 위에 삼층 석탑이 서 있다. ▲ 법계사 산신각에는 산신 할아버지뿐 아니라 산신 할머니도 함께 모셔져 있다. 커다란 자연 암석을 기단 삼아 물끄러미 속계를 바라보고 있는 삼층 석탑, 가공되고 다듬어진 여느 석탑처럼 화려한 꾸밈도 오밀조밀한 미감도 갖추고 있지 않지만 파란 하늘을 가까이 둘렀으니 그동안 느끼지 못하던 또 다른 눈맛을 준다. 군더더기 없이 오로지 법계를 지향하듯 솟아 오른 그 상승감 속에 수많은 스님들과 불자 그리고 석공이 느꼈을 환희심이 가슴으로 전이되는 듯하다. 야트막한 돌담을 들어선 우측의 바위에 석탑이 있고 좌측의 바위엔 사적비가 암각되어 있다. 삼층 석탑 우측에 또 하나의 전각이 있으니 이곳이 과거불인 아미타 부처님을 모셔 놓은 극락전이다. 기와를 포개 쌓은 담장이 참 가지런하다는 느낌을 준다. 포개진 기왓장에서 아기자기하며 고물고물한 정겨움이 느껴진다. 전각과 마당 그리고 둘레의 담장까지 모든 것이 깔끔하게 단정되어 있어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한다. 바람에 딸랑이는 풍경 소리 들으며 극락전을 나와 다시 앞쪽의 전각으로 오르니 그곳은 "山神閣"이란 편액이 붙어있다. 절의 규모에 비하여 조금 크다고 생각되는 산신각으로 들어서니 지금껏 어느 절에서도 보지 못했던 할머니 산신이 모셔져 있다. 물론 할아버지 산신도 모셔져 있고 용왕님도 모셔져 있지만 할머니 산신을 모셔놓은 것이 아주 특이하다. ▲ 너럭바위처럼 거대한 암반위에 둥근 형태의 바위가 두 개 있고 좌측의 바위를 기단으로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삼층석탑이 있다. 바위사이로 보이는 전각이 극락전이다. 지리산은 그 규모만 웅장한 것이 아니라 민족적 애환이 서려 있고 많은 사람들의 치성이 깃들어 있는 명산이다. 방방곡곡이 산인 우리네 일생은 산에서 태어나 산에서 살다 산으로 돌아간다 해고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이런 산에는 산을 지키며 인간들을 돌보는 신이 있다고 믿었다. 산신을 이야기하면 미신이니 어쩌니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산은 평지보다 많은 위험이 있는 곳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위험한 곳에 생존 기반을 둔 사람들이 마음 의지할 뭔가를 찾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 의지처와 대상이 산신이라면 이는 너무 다행한 일이며 당연한 일이다. 법계사 채마전에는 무와 배추가 잘 자라고 있었다. 스님들과 법계사를 찾는 많은 불자들에게 월동 반찬이 될 것이 분명하다. 높은 산중에서 씨 뿌리고 김 매주며 배추를 키웠을 스님들의 일상을 생각하니 그 자체가 선(禪)일 듯하다. 속계와 법계는 과연 엄연히 따로 존재하는 것일까? 아무리 찾아봐도 속계와 법계를 구분 짓는 표식은 보이지 않고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속계인 일주문 밖과 법계인 법계사는 언제고 건널 수 있고 뚜렷한 경계도 없어 마음속에만 그 경계가 그려진 듯하다.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고 하였으니 속계와 법계의 경계는 바로 마음속에 있음이 분명하다. 어리석음과 놓지 못하는 집착이 철옹성 같은 경계를 만든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 온통 바위뿐인 법계사 경내에 자투리처럼 얻어진 채마전에선 올 겨울 월동 양식이 될 배추와 무가 자라고 있었다. 절에서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들을 수 있던 반야심경 끝 부분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제 사바하'를 반복하며 아래로아래로 발길을 옮긴다. 찾아가는 그곳이 과연 영원한 행복이 있는 곳일지는 모르지만 '가자 가자, 어서 가자 영원한 행복의 나라로 어서 가자'라는 의미를 가진 반야심경의 마지막 부분을 되뇌며 다시금 속계로 찾아든다. 알면서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마음 때문에 심신이 답답할 때엔 법계사를 찾아 법계의 기준으로 자아를 돌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거기에 분명 답이 있을 것이다. 보다 높고, 보다 넓은 그리고 보다 깊은 자아성찰이 있으면 속계에선 얻지 못할 후련한 해답이 분명 있을 것이다. |
출처 : ☆하늘아래 첫 산사 지리산 법계사
글쓴이 : 청보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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