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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양양 낙산사

그대는 모르리 2008. 10. 10. 17:28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35호 (양양군)
명 칭 낙산사(洛山寺)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사찰
수량/면적 일곽
지 정 일 1971.12.16
소 재 지 강원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55
시 대 통일신라
소 유 자 낙산사
관 리 자 낙산사
상 세 문 의 강원도 양양군 문화관광과 033-670-2728
일반설명 | 전문설명

관세음보살이 항상 머무른다는 낙산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로, 통일신라 문무왕 16년(676) 의상대사가 지었다고 한다.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의상은 기도를 하다가 관세음보살을 만나 보살이 가르쳐 준 곳에 법당을 지은 후 낙산사라 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에 걸쳐 다시 지었는데, 현재 원통보전을 비롯하여 종각·일주문·천왕문·선실·승방 등의 건물이 남아있다.

관세음보살을 보신 원통보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놓인 다포양식의 건물이다.

절 옆에는 의상이 붉은 연꽃 위에 나타난 관음을 만나 불당을 지었다고 전해지는 자리에 홍련암이 있고, 의상이 앉아서 참선했다는 자리에 세운 의상대가 있다.

낙산사는 해변에 위치한 특이한 구조의 사찰이다.
 
 낙산사(洛山寺) 소실 전 후사진
 
한국불교사에서 관음보살 신앙의 본향이자 관동팔경의 하나로 불교신자 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유서 깊은 사찰인 낙산사가 강원 양양과 고성일대를 덮친 산불로 인하여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전소 되었다고 합니다. 정부는 철저한 고증을 거쳐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할 당시처럼 복구를 계획하고 있지만, 녹아내린 동종과 숯이 되어 버린 목조건물들을 다시 복 원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아무쪼록 예전모습으로 다시 재건되기를 기원 합니다.
0001 ▲ 낙산사(洛山寺)(홍예문)[1]
위치 :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오봉산 소개 :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神興寺)의 말사이다. 해변에 있는 특이한 구조를 갖춘 사찰로서, 한국 3대 관음기도도량 중의 하 나이다. 낙산은 산스크리트 보타락가(補陀洛伽)의 준말로서 관세음보살이 항상 머무르는 곳이다. 671년 의상(義湘)이 창건하였고, 고려 초기에 산불 로 소실되었으나 관음보살과 정취보살을 모신 불전만은 화재를 면하였다. 그 뒤 몽골의 침략으로 전소되었다. 전소된 뒤 몇 차례 중창·중건되었다가 6·25 때 다시 전소된 것을 1953년 일부 복구하였고, 76년 원철(成徹)이 중 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원통보전·종각·일주문·천왕문·선 실·승당·객실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낙산사동종(보물 제479호)·낙산사칠층석탑(보물 제499호)·낙산 사홍예문(강원도유형문화재 제33호)·낙산사원장(洛山寺垣檣;강원도유형문 화재 제34호)·양양낙산사사리탑(강원도유형문화재 제75호) 등이 있다. - 특징 : 석가모니불이 아닌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어 본전을 대웅전이라 하지 않고, 원통보전이라고 함786년 처음 화재로 소실된 이래 한국전쟁 때 까지 산불 등으로 9차례의 화재를 만난 비운의 사찰...
0002 ▲ 낙산사(洛山寺)(원통보존)[2]
낙산사의 중심법당으로서 원통보전을 포함한 절 일원이 현재 강원도유형 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다. 지금의 건물은 1953년에 복구된 것이지만, 예로부터 원통보전은 낙산사의 주요 전각인 것을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양주지밀기낙산사사적(襄州地密記洛山寺事跡)」에서 보듯이 신라시대 의 상스님이 관음굴에서 관음대성을 친견하고 수정(水精)을 건네 받은 뒤 관 음의 계시로 흙으로 빚은 관음상을 관음전에 봉안하면서 낙산사를 창건했 는데, 관음전은 곧 원통보전의 다른 이름이므로 낙산사 창건부터 원통보전 이 주된 금당이었음을 알 수 있다. 창건이후 858년(헌안왕 2)에는 사굴산파의 개산조(開山祖)인 범일(梵日, 810∼889)스님이 이곳에서 정취보살(正趣菩薩)을 친견한 뒤 그 모습을 상 (像)으로 만들어 불전에 봉안했는데, 아마도 관음보살상과 함께 봉안되었 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고려시대에 몽고군의 침략으로 관음상이 훼손되었으나 얼마 안 있어 고려의 명유(名儒)인 이규보 등이 새롭게 관음상의 복장을 조성하기도 했 으니, 역시 원통전이 주요 봉안 전각이었을 듯하다 원통보전 내에는 건칠 관세음보살상을 독존(獨尊)으로 봉안하였고, 2003년 2월 3일 보물 제 1362호로 지정되었고 후불탱화로 아미타극락회도 가 걸렸다. 그밖에 관음상 주위로는 오른쪽에 신중탱화(1959년)와 동종 (銅鐘), 사진본으로 된 의상대사 진영 등 근년에 조성된 성보가 있다.
0003 ▲ 낙산사(洛山寺)[3]
보타전은 해수관음상과 더불어 낙산사가 관음신앙의 성지요 우리 나라의 대표적 관음도량임을 상징하는 전각으로서, 1991년 7월 짓기 시작해서 1993년 4월 10일에 완공했다. 규모는 앞면5칸, 옆면3칸이며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안에는 우리 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천수관음(千手觀音)·성관음(聖觀音)·십 일면관음(十一面觀音)·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마두관음(馬頭觀音)·준제 관음(准堤觀音)·불공견색관음 등 7관음상과 32응신상 천오백관음상이 봉 안되어 있다. 앞면 중앙에 천수관음을 비롯해서 좌우로 6관음, 그리고 뒤쪽으로 천오백 관음상이 있다. 천수관음은 입상이며, 나머지 6관음은 좌상이다. 낙산사 천수관음은 32관음신상으로도 불려지는데, 그 뒤쪽으로는 목각 후불탱이 조성되었다. 보타전 안에는 그밖에 동종과 금고(金鼓)가 있다. 전각 외부 벽화는 낙산사를 창건한 의상스님의 일대기를 그린 것이다.
0004 ▲ 낙산사(洛山寺)(해수관음상)[4]
낙산사 성보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이 해수관음상 (海水觀音像)이다. 그래서 굳이 신자가 아니더라도 동해에 왔다가 낙 산사를 찾는 여행객들이면 빠짐없이 들러 참배하는 것이 하나의 정해 진 코스가 되어 있을 정도다. 1972년 처음 착공되어 5년 만인 1977년 11월 6일 점안했다. 크기는 높이 16m, 둘레 3.3m, 최대 너비 6m이며, 대좌의 앞부분은 쌍룡상(雙龍像), 양 옆에는 사천왕상(四川王像)을 조각했다. 관음상은 대좌 위에 활짝 핀 연 꽃 위에 서 있는데, 왼손으로 감로수병(甘露水甁)을 받쳐 들고 오른손은 가슴께에서 들어 수인 (手印)을 짓고 있다. 이 해수관음상은 우리 나라에서 양질의 화강암 산지로 손꼽는 전라북도 익산에서 약700여 톤을 운반해와 조성한 것이다. 해수관음 상 앞에는 기도처인 관음전이 있다.
0005 ▲ 낙산사(洛山寺)(보타전 내 관음상)[5]
1993년에 완성된 보타전 안에는 한국에선 처음으로 천수관음(32관음신상)· 성관음·십일면관음·여의륜관음·마두관음·준제관음·불공견색관음 등 7관음을 봉안했다. 그리고 그 뒤에 1500관음상이 모셔져 있다. 관음신앙의 성지답게 그야말로 모든 관음상이 봉안된 셈이다. 이렇듯 많은 관음상을 조성한 것은 우리 민족의 구제와 해탈을 기원하는 뜻에서라고 한다. 1500관음상 한 분 한 분의 천수천안과 32응신상을 곱하 면 그 수가 5천만 정도인데, 그것은 곧 5천만 우리 민족의 인구 수와 일치 한다. 곧 우리 5천만 민족의 구원과 해탈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관음 상의 재질은 모두 목조로서 백두산에서 자라는 홍송(紅松)이다. 한편 7관 음상을 봉안하던 날의 이적(異蹟)이 전해져 눈길을 끈다. 그날 밤에 하늘 에서 풍악소리가 들리는가 했더니, 청학(靑鶴) 다섯 마리가 허공을 날아 올랐고 그 때 늘 거친 파도소리를 토해 내던 동해 바다가 문득 조용해졌으며, 무지개와 같은 서기광명(瑞氣光明)이 온 하늘에 가득 찼다고 한다. 또한 그날 밤 신도회장은 동해 바닷물이 해일 을 일으켜 보타전까지 날아 오르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0006 ▲ 낙산사(洛山寺)(칠층석탑)[6]
원통보전 앞에 세워진 조선시대 석탑으로서 현재 보물 제499호로 지정되어 있다. 낙산사는 조선 세조 대 (재위,1455∼1468)에 중창되었는데 이 탑도 그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은 비록 부분적으로 파손된 곳이 있으 나 대체적으로는 탑의 상륜(相輪)부분까지 비교적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 어 조선시대 불탑 연구에 훌륭한 자료가 된다. 탑의 양식을 살펴보면, 평면은 방형(方形)으로서 기단석 위에 탑신이 놓이 고 그위에 상륜부가 마련된 구조를 하고 있다. 기단석(基壇石)은 지면에 2 단의 층을 이룬 지복석(地覆石)과 그 위의 복련(伏蓮)이 조각된 지대석 (地臺石)으로 구성되었다. 기단은 단층기단으로서 우주(隅柱)가 새겨지지 않았고, 그 위에 얹은 뚜껑 돌인 갑석(甲石)은 아래 위가 수평인 하나의 돌로 된 판석(板石)인데, 그 밑에 부연(副椽)과 2단의 각형(角形) 고임이 있다. 기단 상면에는 겹잎〔複蓮〕의 복련(覆蓮) 24잎이 조각되었다. 이 탑은 전체적 양식은 강릉시 내곡동 403번지에 있는 보물 제87호 신복사 (神福寺)터 삼층석탑과 비슷하여 신복사터 삼층석탑을 모방한 것으로 판단 하는데, 이것은 동해안 지역의 고려시대 석탑 양식을 지니는 공통 양식 계 열에 속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탑은 한국전쟁 당시 손상되었으나 1953년 4월 이형근 장군이 낙산사를 중건할 때 함께 재건되었다. 현재 탑의 크기는 전체 높이 620㎝이다. 한편 이 탑은 본래 신라시대에 의상스님이 삼층으로 쌓았다가 조선시대에 세조 임금의 명을 받은 학열(學悅)스님이 9층으로 다시 쌓고 수정염주 (水精念珠)와 여의주(如意珠)를 봉안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본래는 상륜부 가 오동(烏銅)으로 장식되었으나, 1951년 1.4후퇴 때 없어졌고 지금 것은 그 이후에 새로 얹은 것이라고도 한다.
0007 ▲ 낙산사(洛山寺)(공중사리탑)[7]
해수관음상 앞에 있는 관음전 옆의 숲속 길로 들어가서 약 100미터 가량 내려가면 숲 속에 공중사리탑(空中舍利塔)이 있다. 현재 강원도유형문화 재 제7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공중사리탑은 스님의 사리를 봉안한 부도 탑(浮屠塔)으로서, 조선시대 중기인 1692년(숙종 18)에 석겸(釋謙)스님 등이 대원(大願)을 발하여 세웠다고 전한다. 이 공중사리탑을 조성한 인연은, 1683년에 홍련암에서 도금불사를 거행할 때 문득 방안이 서기(瑞氣)로 가득 차더니 공중에서 영롱한 구슬이 탁자 위에 떨어졌다고 한다. 스님들이 그것을 들어보니 유리처럼 광채를 내었다. 스님들이 기뻐 말하기를 "이 같은 상서로움이 옛날에도 두 번이나 있었다 고 하는데, 지금까지 세 번째니 얼마나 반가운가."라고 말했다. 이에 석겸스님 등이 이 탑을 쌓고 그 구슬을 봉안했는데 그 공사가 무려 9 년이나 걸렸다. 그리고는 탑이 완성된 이듬해 수춘거사(壽春居士)라는 문 사(文士)를 초빙하여 그 유래를 탑비(塔碑)에 적었는데, 이 탑비는 현재 홍 련암 옆에 있다.
0008 ▲ 낙산사(洛山寺)(동종)[8]
원통보전에서 내려와 대성문을 나서서 왼쪽을 보면 고향당 옆 종각에 보물 제479호로 지정된 낙산사 동종(銅鐘)이 있다. 조선시대인 1469년(예종 1)에 낙산사와 밀접한 관계에 있던 세조를 위해 그의 아들인 예종이 만들게 한 범종이다. 이 범종의 양식을 보면, 종신(鍾身)은 중앙에 세 줄로 된 굵은 띠를 옆으로 돌려서 몸체를 위 아래로 구분했다.보통의 범종에서는 띠 윗부분에 놓이는 유곽(乳廓)과 유두(乳頭)가 생략된 것이 특색이며, 그 자리에 보살상 4체를 양각했고, 그 사이에 범자(梵字) 네 글자씩을 역시 양각으로 배치했다. 보살상은 두광을 갖춘 채 연화좌 위에 서 있는 모습이다. 두광·보관(寶冠)· 천의(天衣) 등의 표현이 모두 유려한 솜씨로 되었습니다. 두광·보관(寶冠)· 천의(天衣)등의 표현이 모두 유려한 솜씨로 되어있다. 이 보살상 위와 종 뉴 바로 아래에 있는 어깨띠〔肩部〕 부분에는 또다시 범자 열 여섯 자를 양각으로 돌아가며 배치했으며, 이 범자 위로 연잎 서른여섯잎을 새겨넣었다. 이 작품은 조선시대 범종 가 운데 16세기 이전에 조성된 드문 예 가운데 하나로서, 당대의 범종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크기는 전체 높이 158㎝, 입지름 98㎝이다.
0009 ▲ 낙산사(洛山寺)(원장)[9]
원통보전 주위에는 그 둘레를 네모 낳게 방형(方形)으로 둘러싸고 있는 조 선시대 초기의 담장인 원장(垣墻)이 있다. 축조된 시기는 세조가 절을 중 건할 때 처음 쌓았다고 전한다. 이 원장은 법당을 둘러싼 성역(聖域) 공간 임을 구분하면서 공간 조형물로서의 효과도 아울러 겸비하고 있다. 사찰 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우리 나라의 대표적 담장이며, 현재 강원도유 형문화재 제 34호로 지정되어 있다. 담장 안쪽의 담벽은 기와로 쌓고 담장 바깥쪽은 막돌로 쌓았다. 법당을 향한 담장 안쪽에는 밑부분에 2단의 장대 석 기단을 조성하고, 그 위에 다시 1단의 장대석 받침돌을 놓았다. 법당을 향한 담장 안쪽에는 밑부분에 2단의 장대석 기단을 조성하고, 그 위에 다시 1단의 장대석 받침돌을 놓았다. 담벽은 강회진흙과 평와(平瓦) 를 차례로 다져 쌓아 담벽앞면에 기와로 가로 세로의 줄을 맞추고, 일정한 간격에 맞추어 둥근 화강암을 바르게 쌓고 돌과 돌 사이는 강화진흙으로 메웠다. 담장 위는 기와로 지붕을 이어 담벽을 보호 하고 있다. 본래 터만 남아 있 었으나 근래에 전체적으로 보수하면서 연결했다. 크기는 전체 길이 220m, 높이 3.7m이다 원통보전을 나와 조계문과 사천왕문을 지나 나가다보면 일 주문 못미쳐 무지개 모양의 석문(石門)인 홍예문(虹霓門)이 있다. 이 홍예문은 위는 누각(樓閣)이고 그 아래가 무지개 모양을 이룬다. 홍예 문은 1467년(세조 13)에 축조되었다고 전하며, 그 위의 누각은 1963년 10 월에 지은 것이다. 축조 방식은 먼저 문의 기단부에 걸치게 다듬은 2단의 큼직한 자연석을 놓고, 그 위에 화강석으로 된 방형의 선단석(扇單石) 3개 를 앞 뒤 두 줄로 쌓아 둥근문을 만들었다. 선단석은 홍예문 등에 사용되 는 맨 밑을 괴는 모난 돌을 가리킨다. 문의 좌우에는 큰 강돌로 홍예문 위까지 성벽과 같은 벽을 쌓아 사찰 경내 와 밖을 구분했다. 이 홍예문에는 장방형으로 26개의 화강석이 사용되었다. 그것은 당시 강원도에는 26개의고을이 있었는데, 세조의 뜻에 따라 각 고 을에서 석재 하나씩을 내어 쌓았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혹은 사용된 돌은 강현면 정암리 길가의 것을 가져다 쌓은 것이라고도 전한다.
0010 ▲ 낙산사(洛山寺)(홍예문)[10] 0011 ▲ 낙산사(洛山寺)(홍련암)[11]
낙산사의 산내암자의 홍련암(紅蓮庵)은 의상대 북쪽300m 지점에 있다. 이 홍련암은 의상대사가 본절인 낙산사를 창건하기 앞서 관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한 장소로서, 또한 관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석굴 안에서 기도하던 바로 그 장소로서 낙산사의 모태가 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관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하여 당시 신라의 서울인 경주(慶州)에서부터 멀 리 이 곳까지 온 의상대사는 이곳에서 푸른 새〔靑鳥〕를 만났는데, 새가 석굴 속으로 들어가므로 이상히 여겨 굴 앞에서 밤낮으로 7일 동안 기도 를 했다. 이윽고 7일 후 바다 위에 붉은 연꽃, 곧 홍련이 솟아나더니 그 위에 관음 보살이 나타나 의상대사는 드디어 친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곳에 암 자를 세우고 홍련암이라고 이름 짓고, 푸른 새가 사라진 굴을 관음굴 (觀音窟)이라 불렀다고 한다. 한편 또다른 창건설화로서는,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한 자리 에 대나무가 솟았는데, 그 곳에 불전(佛殿)을 지으니 곧 홍련암이라고도 전한다. 두 이야기 전부 의상대사가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를 올려 관음보 살을 친견했다는 내용에서는 일치하며, 부분적으로 파랑새·대나무·석굴 등 이 첨가된 것이므로 결국 하나의 이야기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홍련암의 연혁은 주로 『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에 의거해 살펴볼 수 있다. 그 책에 따르면 의상대사의 창건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1619년 (광해군 11)에 중건되었고, 1752년(영조 28)에 덕린(德麟)스님이 중수했다. 이어서 1797년(정조 21)에 혜민(惠旻)스님 중건, 그리고 1869년(고종 6)에 의연 (義演)스님이 중건했으며 1911년에 흥운(興雲)·청호(晴湖) 두 스님이 중 수했다고 한다. 1869년의 중건은 1866년의 홍수로 무너졌기 때문이며, 1911년의 중수는 1908년(융희 2)에 절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연혁이 비 교적 짧고 통일신라·고려시대의 연혁이 거의 전하지 않는 점이 아쉽지만, 남겨진 기록을 통해서나마 그런대로 낙산사와 더불어 꾸준히 법등을 이 어왔음을 알 수 있다. 절의 당우로는 관음전과 요사가 있다. 전각이나 불 상·불화등에서 오래된 것은 없으나 홍련암 전체가 현재 강원도문화재자 료 제36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에는 동암 도봉(東庵道峰)스님이 1962년에 중건한 봉향각(奉香閣)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관음전 등은 1975년의 중창 때 지어졌으며, 안에 봉안된 탱화 역시 같은 해에 조성되었다. 관음전 앞면과 옆면 각 3칸씩인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서 바닷가 암석굴(巖石窟) 위에 자리잡고 있다. 이 전각은 법당 가운데쯤에 조그맣게 마루를 뚫어 놓아 그곳으로 출렁이 는 바닷물을 실감나게 볼 수 있도록 만든 것이 특이하다. 절 근처 바닷가 에는 보기 드문 석간수(石澗水)가 있는데, 이 샘은 원효스님이 양양에 있 는 영혈사(靈穴寺) 샘물을 석장(錫杖)에 담아 끌어 왔다는 설화가 전한다. 이 샘물은 지금은 보타전 앞으로 옮겨져 있다.
0012 ▲ 낙산사(洛山寺)(의상대)[12]
의상대(義湘臺)는 의상스님이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와 낙산사를 지을 때 이곳에 이르러 산세를 살핀 곳이며, 의상스님의 좌선(坐禪) 수행처라고 전한다. 낙산사에서 홍련암의 관음굴로 가는 해안 언덕에 있다. 체조스님 의 활동년대가 18세기이므로 위의 시를 통하여 적어도 이 때까지는 의상 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 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근대 이전에 폐허가 되었던 듯하 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1925년에 낙산사 주지 김만옹(金晩翁)스님이 이 곳 에 정자를 새로 지었다. 정자를 지을 당시가 6월인데, 들보로 쓸 굵은 나무 를 구하고 있었다. 그러던 참에 거센 비바람이 몰아쳐 대 위에 있던 소나무 한 그루가 넘어졌 고, 스님은 그 소나무로 들보를 만들어 육각형의 정자를 완성했다고 한다. 예로부터 이 곳을 의상대로 불러 왔으나 이 때 정식으로 의상대라는 이름 이 붙었다. 그러나 1936년 폭풍으로 무너졌다가 이듬해 중건되었으며1974년에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되었고 1975년에도 한 차례 중건되었다. 근래는 1994년 11월 강원도에서 의상대를 점검한 결과 기둥·기와 등 구조체가 10도 가량 기울었고, 기둥이 썩는 흔적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 등 붕괴 위험이 있어 해체되었 다가 1995년 8월에 육각정(六角亭)으로 복원되었다. 이 곳은 낙산사에서 홍련암의 관음굴로 가는 길 해안 언덕 위에 있는데, 주위 경관이 매우 아름 다워 예로부터 '관동 팔경'의 하나로 꼽히면서 시인 묵객이 즉겨 찾는 곳이 었으며, 지금도 낙산사를 찾으면 반드시 들러 보는 곳이 되었다.
[가져온 곳/감초 글쓴이 : 감초]
0013 ▲ 화마가 한 순간에 빼앗아 가 버린 낙산사(洛山寺)화제현장[13] 0014 ▲ 화마가 한 순간에 빼앗아 가 버린 낙산사(洛山寺)화제현장[14] 0015 ▲ 화마가 한 순간에 빼앗아 가 버린 낙산사(洛山寺)화제현장[15] 0016 ▲ 화마가 한 순간에 빼앗아 가 버린 낙산사(洛山寺)화제현장[16] 0017 ▲ 화마가 한 순간에 빼앗아 가 버린 낙산사(洛山寺)화제현장[17] 0018 ▲ 화마가 한 순간에 빼앗아 가 버린 낙산사(洛山寺)화제현장[18] 0019 ▲ 화마가 한 순간에 빼앗아 가 버린 낙산사(洛山寺)화제현장[19] 0020 ▲ 낙산사(洛山寺) 천년 만년 ...관음신앙의 성지![20] 0021 ▲ 낙산사(洛山寺)소실전[21] 0022 ▲ 낙산사(洛山寺)소실전[22] 0023 ▲ 낙산사(洛山寺)소실전[23] 0024 ▲ 낙산사(洛山寺)소실전[24] 0025 ▲ 낙산사(洛山寺)원통보전(소실)7층석탑(현존) 소실전[25] 0026 ▲ 낙산사(洛山寺) 원통보전(소실)7층석탑(현존) 소실전[26] 0027 ▲ 낙산사(洛山寺)소실전[27] 0028 ▲ 낙산사(洛山寺)소실전[28] 0029 ▲ 낙산사(洛山寺)소실전[29] 0030 ▲ 낙산사(洛山寺)소실전[30] 0031 ▲ 낙산사(洛山寺)소실전[31] 0032 ▲ 낙산사(洛山寺)소실전[32] 0033 ▲ 낙산사(洛山寺)(공중사리탑}(현존)[33] 0034 ▲ 낙산사(洛山寺) 소실전[34] 0035 ▲ 낙산사(洛山寺) 해수관세음보살님(현존)[35] 0036 ▲ 020 낙산사(洛山寺) 해수관세음보살님(현존)[36] 0037 ▲ 낙산사(洛山寺) (해수관세음보살님(현존))[37] 0038 ▲ 낙산사(洛山寺)(바다가 보이는 의상대(현존))[38] 0039 ▲ 낙산사(洛山寺)(홍련암(현존))[39] 0040 ▲ 낙산사(홍련암(현존)앞바다)[34] 출처 : 세상사 바로보기 | 글쓴이 : 증인
오전 8:33 2007-06-29(금) “오동나무” 올림

 

양양, 낙산사의 전설  




 

낙산사의 사랑



 

관세음보살은 모든 중생의 대자대비하신 스승이요, 어머니이다.
관세음보살은 남녀의 양성(兩性)을 초월한 분이지만, 고해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언제나 눈부신 하얀 옷을 입고, 성자로써 갖추어야 할 32상(32相)과 80종호(種好)를 갖춘 절세의 미인으로 응신(應身)한다.

그러나 금강경에 부처님께서 부처님의 참모습에 대해 언급한 “나를 색상이나 소리로써 구하려 한다면 이는 사도를 행하는 사람이다. 능히 부처님의 참모습을 볼 수 없으리라.(若以色見我 爲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과 같이 관세음보살의 참모습도 그와 같을 것이다.
그러나, 오탁악세의 고해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관세음보살은 앞서의 백의의 절세미인으로 중생앞에 응신하니 무상한 역사에서 이를 증거하는 사람은 항하사 모래수와 같이 부지기수이다.

관세음보살은 32가지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응신(應身)을 하고, 열네가지 두려움이 없는 힘(十四無畏力)과 네 가지의 부사의한 덕(四不思議德)으로 무애하게 수용(受用)하면서, 팔만사천의 머리(八萬四千 迦羅首)와 팔만사천의 청정한 눈(八萬四千淸淨寶目)과 팔만사천의 팔과 손(八萬四千母陀羅臂)과 팔만사천의 청정한 눈(八萬四千淸淨寶目)으로 혹은 대자대비로 혹은 위의(威儀)를 보이면서 그 몸을 항하사 모래수와 같은 중생에게 나투며(分形散體) 중생을 구제하여 이고득락(離苦得樂)하게 하는 불보살이요, 성신(聖神)이다.

경전에 의하면, 관세음보살의 진신이 상주하는 곳은 바닷가 외로운 절벽(海岸孤絶處)에 있다는 보타낙가산(寶陀洛迦山)의 대나무 숲이 우거진 곳(竹林院)이라고 한다. 그 도량을 백화도량(白花道場)이라고 부른다.
경전속의 낙가산과 환경설정이 똑같은 곳이 이 땅에 있으니 강원도 양양 땅에 소재한 낙산사가 바로 그곳이다. 푸르른 동해바다가 일망무제(一望無際)로 보이는 바위가 많은 고절처(孤絶處)에 자리한 낙산사는 경전속의 관세음보살의 진신이 상주하는 도량이 분명하다.

의상대사가 당나라에 가서 불교를 배워 귀국한 후, 꿈속의 선몽에 의해 관세음보살의 진신이 상주하는 곳을 찾으니 바로 낙산사이다. 의상대사는 일주일의 기도끝에 낙산사에서 관세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했다. 소문을 듣고 원효대사도 뒤질세라 낙산사에서 관세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하고자 간절히 기도를 했으나, 원효대사는 끝내 관세음보살을 친견하지 못하고 말았다. 원효대사가 관세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하지 못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자.

관세음보살을 간절히 청하는 관음청(觀音請)에는 다음과 같은 가영(歌詠)이 있다. 독자는 가영을 참구하여 깨달을 지어다.

백의관음 무설설(白衣觀音無說說)
하얀 옷입은 관세음보살은 법을 설하지 않는 가운데 법을 설하시고,
남순동자 불문문(南巡童子 不聞聞)
남순동자는 법을 듣지 않는 가운데 법을 듣도다
병상녹양 삼제하(甁上綠楊三際夏)
관세음보살이 들고 있는 감로수 병의 늘 푸른 버드나무는 언제나 여름이고,
암전취죽 시방춘(岩前翠竹十方春)
관세음보살의 도량의 바위 앞에 있는 취죽은 언제나 봄이로다.

독자 여러분이 낙산사를 찾는다면, 낙산사 큰법당의 주불로 금빛 관세음보살상이 봉안되어 만세의 미소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목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관세음보살상은 낙산사에 산주한다는 관세음보살의 진신이 여러분의 눈앞에 응신한 또 하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낙산사에 그 관세음보살상은 봉안된 이래로 고해중생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여 오고 있으니 그 영험담은 부지기수이다. 그런데, 그 낙산사에 다른 절에서는 들어볼 수 없는 슬픈 사랑의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어 소개한다.

때는 불교가 흥왕하던 신라시대, 당시 낙산사에는 조실스님인 60대인 원공(圓空)대사를 중심으로 20대 초반의 승려 조신(調信)과 같은 또래의 해월(海月)이 살고 있었다.
어느 봄 날, 세 사람은 법당의 관세음보살님께 새벽예불을 마치고 난 후, 법당 안 마루에 관음상을 마주하여 두 눈을 감고 참선에 들어갔다. 고요속에 화두삼매에 들어야 할 조신은 망념으로 인해 화두가 잡히지를 않았다. 두 눈을 감으면 화두 보다는 선연히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조신이 오매불망 잊지 못하는 그 고을의 김태수의 18세 미혼의 딸인 절세미인 월낭(月娘)의 아름다운 미모였다. 월낭은 화사한 옷을 입고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우는 산길에서 언제나 동행하는 시녀도 없이 혼자 서서 다정한 음성으로 조신을 부르고 있었다
“조신스님, 이리 와서 꽃을 꺾어 주세요.”
월낭은 벼랑 사이에 피어있는 진달래꽃을 손으로 가르키었다. 언제이고 단둘이서 대화를 하고 싶었던 조신은 하늘이 준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월낭이 부르는 대로 정신 없이 걸어갔다. 조신은 월낭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지옥인들 사양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여럽살이 꽃을 꺾어서 월낭에게 주었다. 꽃을 받아든 월낭은 꽃향기를 맡으면서 기뻐 어쩔줄을 모르는 얼굴로 조신에게 고마워했다. 꽃향기에 취한 월낭이 돌뿌리에 걸려 조신 앞으로 쓰러져왔다. 조신의 코에 여자의 향기가 가득 들어왔다. 조신은 황급히 쓰러지는 월낭을 두 팔로 안으면서 벌개진 얼굴로 말했다.
“낭자 조심하시오.”
월낭은 꽃을 손에 든 채 잠시 조신의 품에 기대어 자세를 수습하고, 조신을 정이 가득한 눈으로 건네 보면서 수줍게 변명하듯 말했다.
“수도하시는 분께 큰 결례를 했네요. 죄송해요.”
“아, 아니요. 무슨….다친 곳은 없습니까?”
자석에 붙은 듯 조신이 월낭을 두 팔로 안고서 일순 행복해 있을 그 때, 따악! 장군죽비(보통 죽비 보다 길고 큰 것)가 조신의 목덜미를 힘껏 내리쳤다. 원공대사의 경책(警策)을 말씀이 들렸다.
“썩은 나무는 용처가 없는 법이다. 너는 외양은 수행자의 복색을 하고 참선을 하면서 망념에 빠져 정신을 못차리는 구나. 생사가 화급하거늘 언제 마음공부를 할 것이냐!”
조신의 눈앞에는 원공대사가 장군죽비를 들고 서 있었다.

조신은 앉아서 가슴에 손뫃아 합장을 하고서 고개를 깊숙히 숙여 참회의 모습을 보였다. 옆자리의 해월은 참선을 하면서 재빨리 한 쪽 눈을 열어 혼이 나는 조신을 훔쳐보고서는 재빨리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입가에 고소하다는 듯한 웃음을 흘렸다. 잠시 후, 참선이 새벽 참선이 끝났다. 아침 발우공양 끝에 원공대사가 조신과 해월에게 근엄하게 말했다.
“오늘은 김태수와 가족이 모두 이곳에 제를 지내러 오는 날이다. 도량을 깨끗히 청소하여라.”
조신과 해월은 싸리비를 들고 법당주변과 산문이 있는 곳까지 길을 쓸기 시작했다. 해월이 비질을 하면서 조신에게 추궁하듯 말했다.
“자네, 새벽 참선 때 큰스님으로부터 장군죽비로 경책(警策)을 받을 때, 화두 보다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내가 맞춰볼까?”
조신은 애써 태연한 얼굴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잠시 졸았을 뿐이네.”
  “천만에 자네는 태수님의 딸, 월낭을 생각한 거야. 맞지?”
“졸았을 뿐이라니까! 왜 억지 소리를 하는가!”
“처음 태수님이 오셨을 때 동행한 월낭의 얼굴을 보는 자네는 완전히 혼백이 빠져 나간 사람 같았어. 월낭은 자네에게 관심이 없는데 자네는 틈만 있으면 월낭을 훔쳐보더구먼. 그 때, 나는 자네의 화두는 월낭이 되고 말았다는 것을 짐작했었지. 그러나 자네는 오르지도 못할 나무를 부질없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해. 나 같으면 상상도 하지 않을 걸세.”
“….”
“월낭이 미쳤다고 자네가 나나 신분이 미천한 출신의 가난한 승려를 좋아하겠나? 안 그래? 그리고, 월낭에게는 올가을에 결혼할 정혼한 남자가 있다네. 강대웅이라는 사내인데, 좋은 가문 출신이고, 힘이 장사이고, 무예가 뛰어나 장차 무관으로서 출세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포악한 자로 소문이 난 자라네. 강대웅은 활쏘기에는 백발백중의 재주를 가졌고, 무거운 장검을 잘 쓴다네. 정신차리게 강대웅은 자네가 자기 정혼녀를 넘본다는 것을 안다면 주저 없이 자네에게 화살을 날리고, 장검을 뽑아 자네의 목을 치려들 걸세. 상상만 해도 무서운 일 아닌가!”

얼굴에 겁먹은 표정이 된 조신은 조심스럽게 확인하듯 물었다.
“해월이는 어찌해서 월낭과 주변 소식에 대해 소상히 아는가?”
해월은 힐끗 주위를 살피더니 단 둘이만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교활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솔직이 말해서…. 월낭같은 절세의 미인을 보고서 마음이 동하지 않는 사내가 이 세상에 어디 있겠나? 자네 못지 않게 나역시 첫눈에 반했다네. 그러나,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야. 오르지 못할 나무라고 생각해서 초장에 포기했지. 무엇보다 강대웅 같은 자의 활과 장검에 죽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네. 나는 오직 기회를 보아서 좋은 사찰 주지나 맡았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네. 어떤가?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지? 나는 자네에게 충고하겠네. 월낭에 대해서 상상조차 하지 말고, 나와 함께 평생도반이 되어 살았으면 바라네. 알겠는가?”
"맞아. 월낭은 오르지 못할 나무이지. 월낭이 나 같은 자를 절대 좋아할 리가 없다는 것을 나도 안다네. 이제부터 마음에 깨끗히 지우고 자네와 평생도반으로써 살기로 맹세 하겠네.”
“고맙네. 우리 맹세하는 뜻에서 손을 걸고 맹세하세. 우리는 평생도반으로써 금생은 물론 세세생생 우정을 변치 말기로 하세.”
"암, 낙산사 관음보살님전에 맹세하세!"
해월이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만약 내가 우리의 도반의 우정을 배신한다면, 날벼락을 맞아도 좋네. 자네는?"
"나도 동감이네."
두 사람은 빗자루를 땅에다 던지고 상호 신뢰의 표정으로 두 손을 마주 꽉 잡았다. 두 사람은 손을 마주잡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붉은 해가 동해의 물 속에서 솟아오르는가 하더니 바다는 황금빛으로 출렁였다. 그 때, 멀리서 원공대사의 말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너희들은 빗질을 하여 도량도 청정하게 쓸어내고, 잡념이 일어나는 너희들 마음도 청정하게 쓸어내어 청정한 수행자가 되어야 한다!”

재를 지낼 사시(巳時)가 가까워 오자 김태수와 가솔들이 산문에 들어섰다. 원공대사는 가사장삼을 입고서 좌우에 조신과 해월을 대동하고 산문에 나가 정중히 영접했다.
태수일행과 원공대사, 조신, 해월이 가슴에 합장하고 깊숙히 고개숙여 인사를 나눌 때 조신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들어 허겁지겁 월낭을 찾았다. 월낭은 역시 화사한 고운 옷을 입고 합장하여 인사를 하고 있었다. 월낭이 크고 아름다운 눈을 들어 조신을 건네 보면서 은은하게 미소를 지었다. 조신의 가슴은 봄눈 녹듯이 녹아들었다. 전생에 무슨 인연이었을까. 자나깨나 월낭의 생각뿐인데, 다시 월낭을 대하니 해월과의 맹세가 물거품이 되는 듯 했다.

조신은 가슴은 월낭에 대한 연모의 정으로 가득 메워졌다. 월낭은 조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족들과 함께 법당으로 들어가 관세음보살상 앞에서 염불기도에 전념할 뿐이었다. 조신은 재를 지내면서 목탁을 치며 소리높여 염불을 하다가 몇 번이고 염불을 까먹는 실수를 했다. 관세음보살상을 첨경존안(瞻敬尊顔)을 하면서 목탁에 맞춰 지극지성으로 염불을 해야 하는데, 조신의 눈은 사시(斜視)가 되어 엉뚱히 두 눈을 감고 기도하는 월낭의 옆모습을 훔쳐 보는 것이니, 목탁과 염불이 제대로 어우러질 수가 없다. 염불 내용을 모르는 태수와 월낭 등은 눈치를 못채었지만, 해월은 깜짝깜짝 놀라면서 슬쩍 조신의 무릎을 꼬집었다. 원공대사는 오른 손에 호두알만한 단주를 구을리면서 두 눈을 감고서 험,험, 큰기침을 하여 정신을 차리라고 조신에게 주의를 주었다. 자꾸만 혼미해지는 자신을 자책하면서 간신히 재를 마친 조신은 법당을 나와서 가사장삼을 벗고서는 뒷산의 계곡 쪽으로 뛰었다. 그는 수치심으로 온몸이 달아올라 계곡가에 앉아서 흐르는 물을 손바닥으로 퍼서 얼굴에 끼엊으며 참회진언을 외웠다.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 저의 죄업을 용서하소서….”
조신이 참회진언을 외우면서 계곡가의 바위에 앉아 참회진언을 외우고 있을 때, 등 뒤에서 맑은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조신이 돌아보니 뜻밖에 오매불망 연모하던 월낭이 어린 시녀와 함께 서 있었다. 월낭은 꿈속에서 처럼 다정한 얼굴로 은은하게 미소하면서 말했다.
“혼자 계곡에서 무엇을 하세요?”
조신은 벌떡 일어 서서 꿈인지 생시인지 남모르게 제살을 꼬집어 보면서 어눌하게 대답했다.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마나- 법당에서도 열심히 기도를 하시었는데, 다시 기도를 하시는 것을 보면 수행을 잘하시는 분이군요. 존경합니다.”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왜 오셨습니까?”
“꽃구경을 나왔어요.”
“꽃을 좋아하십니까?”
“좋아하지요. 꽃은 저보다 병환에 누워계신 어머니가 더 좋아하신 답니다. 어머니가 저에게 절에 가는 길에 진달래꽃을 가져다 달라고 하셨어요. 진달래 꽃을 꽃병에다 꽂아 어머니께 드리면 무척 기뻐하실 거예요”
“제가 마음에 드시는 꽃을 꺾어 드릴까요?”
“그래 주시겠어요?”
그 때 시녀가 외쳤다.
“아가씨, 저 석벽 틈에 활짝 피우는 진달래꽃이 있어요.”
조신은 월낭과 함께 시녀가 가르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오르기 힘든 석벽 틈새에 진달래꽃이 무수히 피우고 있었다.

조신이 석벽을 올려보았을 때, 그곳은 오르기 힘든 작은 절벽이었다. 조신은 두려움이 앞섰으나 꽃을 바라보는 월낭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았을 때, 주저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월낭을 위해서는 하늘의 별이라도 따주어야 하고, 지옥인들 두려워해서는 안된다고 굳게 다짐하고서 마침내 석벽을 기어 오르기 시작했다. 월낭은 곱게 낯을 찡그리면서 극구만류했다. 조신은 석벽에 긁혀 손과 팔 여기저기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꽃을 꺾었고, 꽃다발을 월낭의 손에 쥐어 주었다. 월낭은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가 피흐르는 조신의 손을 보고서 덮석 손으로 잡으면서 안타까운 얼굴이 되어 발을 동동 굴렀다. 조신은 월낭의 손이 자신의 손을 잡자 전류가 흐르듯 감격했다.

그날, 오후, 태수와 월낭 등의 가솔들은 모두 산문을 떠나 집으로 향했다. 조신이 산문에 서서 멀어져 가는 월낭의 모습을 넋나간 듯 지켜보는데, 월낭이 돌아서서 은은하게 미소하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조신의 가슴은 더욱 미어지는 슬픔이 몰려왔다.
이루워질 수 없는 사랑이 아닌가. 가을이면 월낭이 정혼자와 결혼한다고 생각하니 조신의 마음은 더욱 애달펐다. 아아, 이룰 수 없는 인연이 왜 만났을까. 조신의 양 볼에는 뜨거운 눈물이 주루룩 타고 내렸다.

그 날 밤부터 조신은 식음을 전폐하고 병석에 누워 버렸다. 그의 머리속에는 이룰 수 없는 애달픈 사랑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호롱불을 밝히며 해월은 자리보전만 하려는 조신을 교활하게 비웃으며 내뱉듯 차겁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불쌍한 자이네. 월낭을 잊고 나와 평생도반으로써 절에서 살자는 맹세를 버렸네. 누데기 옷이 때묻은 경전과 염불 책 몇 권이 전재산인 자네가 태수님의 따님을 넘봐? 엣끼! 미친 사람 같으니. 월낭에 대한 상사병으로 중이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보전을 하겠다? 죽는 길 밖에 있겠어? 신도들이 알면 무어라 할까? 아무래도 내가 원공대사께 자네의 속사정을 말씀드려야 하겠네.”
“제발, 원공대사께는 말씀드리지 말아주시게. 며칠 후, 일어날 터이니….”
조신은 해월에게 애걸복걸했다. 그 시간, 월낭은 조신이 꺾어준 꽃다발을 꽃병에 담아 병석의 어머니의 시야에 놓으면서 가까운 날, 조신을 찾아 낙산사를 다시 찾아야 감사한 마음을 표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여러 날, 식음을 전폐하며 오직 월낭만을 연모하면서 건강이 나빠진 조신은 봄비가 내리는 날, 삿갓을 쓰고 남몰래 산문을 빠져 나가 월낭이 살고 있는 집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솟을 대문에 고루(高樓)와 대소의 전각들이 위용을 보이고 있었다.
찌그러져가는 초가집에서 출생하여 살다가 출기위승한 조신은 신분의 차이를 절감하였다. 혹여 월낭이 솟을 대문을 열고 나오면 그 모습을 멀리서라도 볼까, 조신은 비를 맞으면서 하루종일 안타까운 심정으로 솟을 대문쪽을 바라보았다. 월낭은 끝내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조신은 기침을 쿨럭이면서 월담이라도 해서 월낭의 기거하는 곳을 찾아가고 싶었으나 승려로써 있을 수 없는 행위라고 스스로 자책할 뿐이었다. 그는 마음의 고통속에 비틀거리며 산사로 돌아왔다. 조신은 여전히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보전을 할 뿐이었다.

해월이 작은 밥상에 죽 한그릇을 가져와 권하면서 근심스럽게 지켜보더니 방문을 나서 원공대사의 방을 찾았다.

그 날 밤, 원공대사는 자신의 방으로 조신을 불러 나무라듯 물었다.
“조신아, 너는 껍데기만 출가수행자일 뿐, 속세를 그리워하는구나. 백년세월, 황제의 부귀영화도 한 바탕 꿈인 것을…. ”
조신은 원공대사는 자신의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공손히 무릎을 꿇고 흐느끼었다. 원공대사는 좌정하여 병색이 있는 조신을 측은하게 건네 보면서 단주를 구을리며 물었다.
   “조신아, 나는 네 마음을 알고 있다. 월낭이 그리도 좋으냐?”
조신은 울먹이면서 대답했다.
  “네. 큰스님께 고백하겠습니다. 너무 좋습니다.”
  “월낭은 정혼한 여자이다. 남의 여자인데도 좋으냐?”
  “네. 좋습니다. 일평생이 아닌 하루라도 부부의 인연을 맺었으면 원이 없겠습니다.”
   “남의 정혼녀를 가로채면 정혼자가 너에게 반드시 복수를 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온 세상 이 너를 핍박할 것이다. 그래도 좋으냐?”
  “네. 그래도 좋습니다.”
   “죄업으로 인해 네가 죽는다면 네 영혼은 네가 지은 인과로 인해 명부(冥府)의 염왕(閻王)으로부터 추상같은 심판을 받아 반드시 지옥을 포함한 삼악도(三惡道=지옥, 아귀, 축생) 에 떨어져 고통의 과보를 받게 될 것이다. 삼악도에 떨어져도 월낭이 좋으냐?”
   “네. 큰스님. 월낭과 하루라도 부부의 인연을 맺는다면 삼악도에 떨어져도 절대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너는 월낭과의 사랑이 영원하다고 생각하느냐?”
  “네. 월낭에 대한 저의 사랑은 절대 변함이 없습니다. 저의 진실한 사랑을 월낭이 알면 월낭도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을 주리라 확신합니다.”
  “조신아, 너의 각오가 그러하다면, 소원을 이루어 보아라.”
  “네? 어떻게 저의 소원을 어떻게 이룰 수 있겠습니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저의 신분이라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어요.”
   조신은 거세게 흐느끼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슬픔은 그를 아이처럼 흐느끼게 만들었다. 원공대사는 단주를 방바닥에 놓고 손으로 조신의 등을 토닥이면서 비책을 알려주듯이 말했다.
  “조신아, 너의 사랑이 이루어지도록 내가 도와주겠다.”
  “큰스님께서 월낭을 만나 중매를 서 주시려는 것인가요?"
  “어쨌든 너에게 꼭 월낭을 만나게 해주겠다. 내일 밤 자시에 법당에 들어가 관세음보살상 앞 향로에 세 개에 향에 불을 붙여 향로에 꽂고, 관음기도에 들어가거라. 그 향이 다 타기 전에 월낭을 법당에서 만나게 해주겠다. 월낭을 만나면 그 다음의 일은 네가 생각한대로 하거라. ”
   조신은 원공대사가 자신의 불쌍한 처지를 동정하여 남몰래 월낭에게 연락하여 낙산사 법당으로 월낭을 불러 내려는 계획이라고 생각하고, 조신은 북받치는 환희의 감격으로 합장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그는 아무도 목격자가 있을 수 없는 자시의 법당, 관세음보살상 앞에서 은밀히 상봉하여 인연을 맺게 해주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원공대사는 조신과 월낭을 인연을 영험한 관세음보살상 앞에서 맺어주는 주례사가 되어준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조신이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자신의 방으로 물러 나왔다. 조신이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비틀거리면서 처소로 돌아올 때 뜻밖에 해월이 방안에서 큰 댓자로 누워서 집안이 떠나가라 코를 골아대고 있었다. 조신은 해월을 보고는 이내 싸늘한 눈빛이 되어 나직히 독백했다.
   ‘내일 밤, 내가 월낭을 만날 때, 해월이 목격하면 안되는데…. 쥐도 새도 모르게 월낭을 만나서 야반도주를 해야 하니까….’

   그날 밤, 자시, 조신은 주위를 살피며 숨어들듯 법당안으로 들어갔다. 관세음보살상 앞에 세 개의 향에 불을 붙이고, 목탁을 작은소리로 두두리면서 ‘관세음보살’을 반복하여 부르는 기도에 들어갔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기도를 하는데, 관세음보살은 피워 오르는 향연속에 오직 자비의 미소를 지으면서 조신을 내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동해의 바람이 추녀의 풍경을 울리고, 바람은 법당 주변의 취죽(翠竹)을 스치며 맑고 신비스러운 소리를 내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정근을 하는 조신이 갑자기 졸음이 몰아닥쳤다. 조신은 졸리우는 자신을 스스로 크게 경책 해 마지 않았다. 월낭이 원공대사의 인도로 밤길을 걸어 법당에까지 오고 있는데, 자신은 졸고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몇 번이고 자신을 경책하면서 얼굴을 들어 향연속의 관세음보살을 우러르는데, 드디어 법당문이 살며시 열리는 소리가 났다. 문쪽을 바라보니 과연 거짓말처럼 월낭이 작은 보따리를 들고서 법당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조신은 목탁을 놓아 버리고 벌떡 일어나 월낭에게 다가가 월낭의 손을 잡았다. 월낭은 은은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관세음보살님께 기도를 드리시는군요. 조신스님은 예나 지금이나 오직 기도만 하시는 휼륭한 스님이시군요.”
  “관세음보살님께 월낭과 인연을 맺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리고 있었소.”
  월낭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고마우셔라. 저를 진심으로 사랑하세요?”
   “나는 월낭과의 하룻밤 인연을 맺는다면 삼악도의 고통이라도 좋다고 원공대사에게 말씀드렸다오.”
  “저는 지난 번 조신스님이 위험한 석벽을 기어오르면서 꽃을 꺾어주신 조신스님의 따듯한 정을 한 시도 잊을 수가 없었어요. 저는 정혼자가 있습니다만, 양가의 부모들의 이해득실로 결정된 것일 뿐이예요. 강대웅은 성격이 포악한 자로 소문이 자자한 사람입니다. 저는 그 사람이 싫어요. 이제 저는 조신스님과 백년해로를 하려고, 부모형제와 정혼자도 버리고 보따리를 들고 떠나왔어요. 제발, 저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조신은 흡족한 얼굴이 되어 월낭과 함께 관세음보살상께 삼배의 절을 올렸다. 조신이 합장하여 먼저 관세음보살상을 공경히 우러르며 맹세했다.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 저는 월낭에 대한 사랑이 세세생생 변하지 않을 것임을 맹세하옵니다. 원컨대, 증명하여 주시고, 가호하여 주소서.”
이번에는 월낭이 관세음보살상을 우러러 맹세했다.
   “저 역시 조신스님을 세세생생 사랑할 것입니다. 증명하여 주시고, 가호하여 주소서.”
   다음은 월낭이 조신에게 큰절을 올리면서 변하지 않는 부부의 인연을 맹세했다. 조신도 황급히 맞절을 하고 맹세를 했다. 절을 마치고 난 후, 월낭은 조신의 품에 안겼다. 조신의 품에 안긴 월낭이 다급한 얼굴과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서방님이라고 부르겠어요. 서방님, 한 시 바삐 우리는 우리가 행복하게 살 터전을 찾아 멀리멀리 떠나야 해요. 제가 집에서 서방님과 야반도주를 한 것을 알면, 아버님이 군사를 풀어서 우리를 잡으려 들 것이고, 정혼자인 강대웅이 활과 장검을 들고서 우리를 찾아 복수를 하려고 할 꺼예요. 그리고, 서방님의 친구인 해월스님도 평소 저를 탐하는 눈치였어요. 빨리 도망쳐요.”
   “우리를 맺어준 원공대사님께 하직인사를 해야 하는데….”
   “원공대사님은 오시지 않을 거예요. 그분은 저보고 서방님과 함께 촌각을 다투워 도주를 하라고 하시었어요…. 그리고 내 보따리를 서방님의 걸망에 넣고 어서 질머지세요.”
  “보따리에 뭐가 들어서 무겁소?”
  “우리 평생 먹고 살 금덩이와 은덩이가 들었어요,”
조신은 절세의 미인과 평생 먹고 살 재물을 한꺼번에 얻은 것을 두고, 호박이 넝쿨채 들어왔다고 생각하면서 황소처럼 웃었다.
   “그렇다면, 후일 원공대사님께 보은의 인사를 하기로 하고, 멀리멀리 빨리 떠납시다.”
    두 남녀는 어둠속에 황급히 산문을 빠져나갔다. 조신은 평소 객승 생활을 하면서 보아둔 심산유곡으로 월낭을 데려가서 숨어 살 계획을 세웠다. 조신은 걸망 속에 월낭의 보따리를 넣어 어깨에 메고서 월낭의 손을 잡고 야반도주를 시작했다. 그들이 황급히 도주를 시작했을 때, 법당의 관세음보살상은 향연속에 여전히 자비의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조신은 즉시 승복을 미련없이 불태워 버리고, 속복으로 갈아입고, 심산유곡의 외딴집에 사랑의 신접살림을 차렸다. 두 사람은 세속의 부귀영화를 그리워하지 않고, 서로를 진실로 사랑하면서 산속에서 농사를 짓고 행복하게 살았다. 젊은 두 남녀는 사랑의 도피에 성공했다. 그들은 인적이 끊긴 산속의 외딴집에서 서로의 정열을 불태우면서 꿀맛과 꿈결같은 세월이 10년이나 흘렀다. 그동안 조신과 월낭 사이에는 세 자매를 두었다. 큰 딸은 아홉살, 이름을 향이(香伊), 둘째 딸은 8살, 이름은 덕이(德伊)로 불렀고, 모두 절세미인인 어미를 빼닮아 예뻤다. 셋째는 아들로서 5살, 이름을 동원(東植)이라고 불렀다.
   그 해 어느 봄날, 아침 조신이 혼자 밭에서 혼자 농삿일을 하고 있는데 어디서 날아왔는가 처음보는 까마귀가 조신의 집 가까운 고목의 가지에 앉아 조신의 집을 향해 장차 닥칠 불행을 예고하듯 기분 나쁘게 울어대었다. 조신은 돌멩이를 들어 까마귀에게 던져 까마귀를 쫓았다.
   그 날, 낮 조신이 일하는 등 뒤에서 사내의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 뜻밖에 삿갓을 쓰고 걸망을 등에 멘 웬 승려가 다가왔다. 승려를 가까이서 보니 뜻박에 해월이었다. 해월은 반색을 하면서 큰소리로 말했다.
  “여, 조신대사 아닌가? 속복을 입으니 하마터면 몰라볼 뻔 했구먼. 반갑네, 반가워. 나는 자네를 찾아 전국을 헤매고 다녔지. 자네가 평소 심산유곡의 외딴집에서 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한 것을 내가 기억한 것이 다행이었구먼. 어때, 부인인 월낭자는 잘 살고 있겠지? 아이들도 생겼지? 이 사람, 조신이, 평생도반을 오랫만에 만났는데, 어찌 소태 씹은 표정인가? 반갑네, 반가워. 돌아다니다 보니 끼니를 걸렀는데 우선 밥좀 먹여주소. 꿀맛 같은 농주도 내놓고…. 흐흐흐.….”
   오랫만에 만난 해월은 예전의 순박한 해월이 아니었다. 조신은 옛도반을 만난것이 반가움에 앞서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조신은 해월을 자신의 집, 사랑채 격인 구석진 방으로 안내하여 식사를 대접할 수 밖에 없었다. 해월은 걸신들린 듯 밥을 먹고는 안주인에게 인사를 하겠다고 부득부득 우기었다. 별 수 없이 월낭이 나와서 인사를 하는데, 해월은 믿기지 않는 듯이 손으로 눈을 부비며 탐욕스럽게 건네 보았다. 그 날 밤, 해월은 호롱불을 밝힌 구석방에서 농주를 청해 물마시듯 마시어 대취한 상태에서 비열한 웃음을 지어 보이면서 말했다.
   “자네가 월낭자와 야반도주했다는 소문을 듣고 나는 한동안 믿기지가 않았다네. 그러나 오늘 내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과연 자네는 분명히 태수 따님과 부부가 되어 있구먼. 자네는 나같은 박복한 놈과는 격이 다른 행운아일세. 자네가 절세미인과 행복하게 살고 있을 때, 나는 늘 반복되는 삶을 살았지. 영양가 없는 사찰의 조악한 음식으로 허기를 간신히 떼우고, 누데기 옷을 입고, 눈을 뜨는 새벽부터 눈을 감는 깊은 밤까지 늘 목탁치고, 요령 흔들기도 하고, 빗자루를 들고 도량을 청소하고, 걸레로 법당과 요사채 마루를 닦았네. 하루종일 쉬지않고 노동을 했지만, 수행자는 무소유사상이어야 한다는 원공대사의 교훈을 실천하기 위해 호주머니는 구린 엽전 한 푼 없는 빈털터리였고. 여유시간이 있으면 참선을 했었지. 밤이면 누더기 이불을 덮고 혼자 외롭게 새우잠을 자면서 자네의 행운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불운을 탓하며 수없이 울었다네.”
조신은 해월의 말을 들으면서 자꾸 불안한 얼굴이 되어갔다. 그는 나무라는 투로 해월에게 말했다.
  “행운이니, 불운이니 그런 소리 마시게. 그나저나 원공대사님은 잘 계신가?”
  해월은 공이 튀기듯 반사적으로 화를 내면서 대꾸했다.
  “자나깨나 잔소리만 늘어놓는 노인의 이야기는 왜 꺼내는가? 그 노장 생각만 해도 신물이 나네. 그 노장 말대로 부처가 되어서 뭐하나? 부처는 안 죽나? 나는 자네와 월낭이 행복하게 사는 것을 마음속으로 축원하면서 곡차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중독이 되어버렸어. 사부대중이 나를 술중독자라고 지탄을 해대고, 나는 그것이 싫어서 절을 나왔지. 걸망에 술병을 담아 마시면서 전국 방방곡곡의 심산유곡을 찾아다니면서 자네 찾기를 바랐다네.”
   “나를 찾아서 어쩌려구?”
  “보고싶었어. 자네가 정말 월낭자와 자녀를 두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똑똑히 보고 싶었단 말이야. 아무튼 축하하네. 자네는 행운아야. 암. 축하하네.”
   해월은 조신에게 농주를 또 청했다. 조신은 술은 더이상 없다고 말하니, 해월은 화를 벌컥 내면서 말했다.
   “조신이, 월낭자의 정혼자였던 강대웅을 잊지는 않았지? 강대웅은 중한테 자신의 정혼녀를 도둑맞아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네. 그는 자네들을 붙잡아 죽이려고 현상금까지 내걸고 찾아다닌다네. 어깨에 강궁(强弓)을 메고, 장검을 들고서 말일세. 내가 자네와 평생도반이 아니었다면, 나는 곡차값 때문에 강대웅을 찾았을 걸세. 강대웅이 뿐인가, 딸을 잃은 김태수도 군사를 풀어서 자네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잇다네. 그러나, 걱정하지 매시게. 나는 자네와 평생도반 아닌가. 그러니 술을 더 내오시게.”
   “정말 술이 떨어졌네. 거짓말이 아닐세.”
  “그렇다면 내 술을 마셔야겠구먼. 평생도반한테 이렇게 대접해서 되겠어?”
  해월은 때묻은 걸망속에서 술병을 끄집어내어 병나발을 불었다. 해월은 술에 취하자 거슴츠레한 눈을 뜨고서 교활하게 씩 웃더니 이상한 말을 힘주어 말했다.
  “조신이, 나한테 적선좀 해주시게. 나는 박복한 놈이 아닌가.”
   “무얼 적선을 하라는 것인가?”
   “흐흐흐…. 적선할 일이 있구말구. 오늘은 이만 얘기하세. 월낭자는 예나 지금이나 절세의 미인이더구먼. 자네는 행운아야….”
   해월은 쓰러져 방안이 떠나가라 코를 골아대면서 잠이 들었다. 조신은 잠자는 해월을 내려보면서 자꾸만 불안한 마음이 되었다. 술주뱅이가 된 타락한 승려가 된 해월이 무슨 짓을 벌일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조신이 호롱불을 꺼주고, 불안한 마음속에 해월의 방문을 나섰을 때, 하늘에는 둥근 달이 중천에 떠 있었다. 숲속에서는 부엉이의 음산한 울음이 들려왔다. 그 때 조신의 눈에는 마당에 놓인 낫이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조신은 스스로를 경책하면서 아내의 방을 찾았을 때, 아내는 잠든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얼굴이 하얗게 되어 조신의 품에 안기면서 겁먹은 음성으로 말했다.
   “여보, 예전의 해월스님이 아니예요. 눈이 무서워요….
   다음 날, 아침, 아침식사를 함께 하기 위해 조신이 해월의 방문을 열었을 때, 해월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사흘 후, 낮에 조신이 자녀와 함께 집뒤의 뒷산에서 산나물을 뜯어 돌아오는데 집쪽에서 월낭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달려와 보니 방안에서 해월이 월낭을 강제로 겁탈하기 직전이었다. 월낭의 치마 저고리가 찢겨져 있었다. 조신은 뭉둥이로 해월의 등짝을 내려치고 위기의 월낭을 구하여 피신케 했다. 해월은 술냄새를 풍기면서 두 눈을 부릅뜨고 조신에게 악을 써대었다.
   “네가 평생도반에게 몽둥이질을 해? 너같은 놈한테 몸을 준 바람난 계집인데, 내가 한번쯤 건드리면 안되냐? 나는 왜 안되다는 것이냐? 나도 너 못지 않게 월낭을 사랑했단 말이야! 나는 너처럼 야반도주를 실천 못했을 뿐이야. 내가 너한테 박복한 나에게 적선을 하라는 말 기억하겠지? 분명히 말하겠는데, 네 마누라를 나한테 넘기든지, 아니면 네놈의 큰 딸을 내게 마누라로 내놓든지 결정을 해! 아니면, 지금 당장 산을 내려가서 김태수와 강대웅에게 네놈의 거처를 고발할거야! 이제 나도 너처럼 행복하게 살아야겠어. 네가 나보다 나은게 뭐가 있어 이놈아!”
   해월은 걸망에 담아온 술병으로 병나발을 불면서 조신에게 마누라가 아니면 딸을 내놓으라고 악을 쓰다가 술에 곯아 떨어져 코를 골며 잠에 떨어졌다. 조신이 아내를 찾았을 때 아내는 흐느끼면서 해월의 말을 전했다.
   “저 자가 말하기를 저에게 당장 도망을 가자고 그랬어요. 강대웅이에게 우리의 거처를 고발하고 한 발 먼저 왔다는 거예요. 당신은 강대웅이의 손에 죽게 하고, 저를 차지하여 도주하겠다면서 저를 겁탈하려 했어요. 저 자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한 시 바삐 이곳에서 도망을 쳐야 해요!”
   조신은 월낭과의 사랑의 보금자리가 평생도반의 등장 때문에 산산조각이 났다는 것을 절감했다. 월낭이 도주하기 위해 보따리를 챙기고 있을 때, 조신은 눈에 불을 켜고서 시퍼런 낫을 들고 해월의 방으로 들어갔다. 해월이 눈을 번쩍 뜨고서 낫을 들고 들어오는 조신을 보고 두눈에 공포가 확산되었다. 해월은 방구석으로 몸을 피해 웅크린채 애걸복걸했다.
   “자, 자네…, 왜 그러나? 대화를 하세.”
   “평생도반이 원수요, 악귀였구나. 네 놈이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나를 처치하고 아내를 차지하기 위해서 강대웅이에게 고발을 했다면서? 악귀같은 놈!….”
   “용, 용서해주게. 월낭을 사모하는 마음에 질투로 눈이 멀었네. 제발 사, 살려주시게….”
   조신의 낫은 해월의 가슴을 인정 사정없이 파고 들었다. 해월의 단말마의 비명이 골짜기를 울려 퍼졌다. 그 때, 월낭이 방문을 열고서 낫에 찔려 피를 흘리며 죽은 해월의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여보, 사람을 죽일 필요는 없잖아요! 이제 살인자가 되었으니 어쩌지요?”
   멀리서 말발굽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조신은 강대웅이 복수를 위해 수하들과 화급히 달려온다고 생각했다. 조신은 강대웅의 무서운 강궁과 장검을 생각하며 공포로 부르르 온몸을 떨었다. 조신과 보따리를 든 아내와 자녀들은 자빠지고 엎어지며 정신없이 숲속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득히 강대웅의 사납게 외치는 소리가 바람결에 조신의 귀에 들려왔다.
   “놈은 같은 승려까지 살해한 악귀같은 자이다. 원수놈은 아직 이 산을 빠져 나가지 못했다! 철저히 수색하여 반드시 죽여라! 상금을 내릴 것이다!”
   조신은 처자와 함께 기를 쓰고 도주를 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강대웅의 포위망은 점점 좁혀왔다. 그들이 공포속에 정신 없이 엎어지며 자빠지며 도망을 치는 가운데 숲속에서 화살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고 날아들어 동식의 가슴에 명중하였다. 월낭은 어린 아들이 화살을 맞고 죽어가는 것을 보고 미친듯이 울부짖었다. 조신은 애통과 분노의 눈물을 흘리면서 손바닥으로 비명을 지르는 월낭의 입을 막았다. 이윽고 조신은 숨죽여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아내의 손에서 아들의 시체를 받아 낙엽이 두텁게 깔린 곳에 가매장을 하고 표시를 했다. 조신은 울음섞인 음성으로 몸부림치는 아내에게 현재의 위기에서 벗어난다면 돌아와 죽은 아들의 시신을 양지바른 곳에 묻자고 말했다. 그들이 다시 숲속으로 도망을 칠 때, 또 숲속에서 화살이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화살이 향이의 가슴에 깊숙히 박혔다. 월낭은 화살에 맞아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향이를 안고 몸부림을 치면서 울부짖었다. 조신은 다시 향이의 시체를 가매장하고 표시를 할 뿐이었다. 조신은 울부짖는 아내와 둘째인 덕이를 데리고 필사의 도망을 쳤다.
   산속에 어둠이 깔려왔다. 조신은 귀를 기울여보니 뒤쫓는 소리가 전연 들리지 않았다. 강대웅의 포위망에서 벗어난 듯 싶었다. 조신은 다소 안도의 마음이 되었다. 조신은 덕이를 업고 줄곧 흐느끼는 아내를 부축하고 산길을 걷는데 산속에서 늑대의 울부짖는 소리가 가까워왔다. 조신은 늑대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인가를 찾아야 겠다고 초조하게 생각하는데, 시야의 산 밑에 인가의 불빛이 반짝였다. 조신은 흐느끼는 아내에게 달래듯이 말했다.
   “여보, 늑대를 피하기 위해서 오늘밤은 별 수 없이 저 집에서 신세를 질 수 밖에 없겠으니 나를 따르시오.”
   조신의 일행이 불빛을 찾아 당도하니 산고개 중턱에 외롭게 자리잡은 주막집이었다. 주막집은 초가집 두채였고, 싸립문 앞의 큰 기둥에는 ‘주막’이라는 한자가 적혀있는 깃발과 호롱불이 담긴 등이 행인을 부르고 있었다. 조신이 아내와 딸은 나무 그늘에 숨기고, 혼자 조심스럽게 주막의 동정을 살피니 손님은 없고, 불을 켜진 주인부부의 방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 소리만 들려왔다. 조신은 헛기침을 하고서 주인장을 불렀다. 50대의 남자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누구시오?” .
   “산을 넘다가 날이 저물어서 식사와 함께 하룻밤 신세를 지고자 합니다. 숙식비는 드리겠습니다.”
   “잘 오시었소. 밤중에 산을 넘는 것은 위험하다오. 사람잡아먹는 호랑이와 늑대가 떼지어 다닌다오. 여기서 자고, 날이 밝으면 떠나시는게 좋지요.”
조신이 숙식비를 치루고, 주인이 지정하는 방으로 아내와 딸을 데리고 들어갔다. 밥상이 나왔으나 아내는 수저를 들 생각은 하지 않고, 딸을 안고서 오직 숨죽여 슬프게 흐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깊은 밤중, 덕이만이 잠이 들고 죽은 자식생각에 울기를 그치지 않는 월낭을 방에 두고 조신은 소변을 보려고 방문을 나섰다. 이상하게도 부엌 쪽에 불이 밝혀져 있어 소리죽여 다가서 보니 주인부부가 무슨 준비를 하고 있는 듯 했다. 남자는 큰 숯돌에다 칼을 쓱쓱 갈고 있었다. 여자가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자고있는 부부가 현상금이 붙은 자들이 분명히 맞아요?”
   “저 자들 오기전에 다녀간 사람들 말을 들으니 승려까지 죽이고 도망친 살인자들이 라는 거야. 날이 밝기 전에 년놈을 죽이든 살리든 잡아서 현상금을 타야 해!”
조신은 주인부부가 야반삼경에 칼을 갈면서 무엇을 획책하는 가를 확연히 깨달았다. 그는 황급히 방안에 뛰어들어 잠든 딸을 등에 업으면서 흐느끼는 아내에게 다급히 말했다.
   “여보, 이곳도 우리를 잡아 강대웅이게 넘기려는 자의 소굴이요. 저들이 칼을 들고 닥치기 전에 어서 도망을 칩시다.”
   조신과 월낭이 정신없이 어둠속의 숲속으로 도망을 칠 때, 등뒤에서 주인여자의 쇳소리 같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현상금들이 도망을 쳤어요. 빨리 뒤쫓아서 잡아요!”
   “그것들, 눈치 한 번 빠르군. 걱정 마, 독안의 쥐야. 마누라도 낫을 들고 따라와요. 굴러들어온 현상금을 놓쳐서는 안되지!”
   주막집의 남편은 한 손에는 횃불, 다른 손에는 시퍼런 큰 칼을 들고, 마누라는 시퍼런 낫을 들고서 조신부부를 바싹 추격해왔다. 잠든 딸을 업은 조신과 흐느끼는 월낭은 다시 생사의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자빠지고, 엎어지면서 비명을 지르기도 하면서 도망을 치면, 추격하는 주막집 부부의 ‘살인자야, 꼼짝 말아!’사나운 소리가 캄캄한 산골짜기를 울렸다. 조신과 가족이 꿩처럼 풀숲에 숨어서 가쁜 호흡속에 잠시 쉬는데,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붉은 태양이 산위로 불끈 솟아 올랐다. 어디선가 말발굽소리와 함께 사내들의 외치는 소리가 가까히 들려오는 듯 했다. 주막집 부부의 외치는 소리도 들려오는 듯 했다. 조신은 딸을 업고 아내와 함께 다시 도망을 치려고 했으나, 자신들이 서 있는 곳은 더이상 도망을 갈 수 없는 천길 단애(斷崖)라는 것을 깨달았다. 벼랑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보니 까마득한 아래에는 바위들이 살벌하게 뾰족뾰족 솟아 올라 있었다. 조신과 월낭은 단애에서 밑으로 떨어지면 살아날 가망은 전혀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절망했다. 그 때, 숲속에서 또, 화살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면서 날아들어 마지막 남은 자식인 덕이의 가슴에 깊숙히 파고 들었다. 덕이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월낭은 덕이의 시신을 안고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통곡하였다. 조신과 월낭의 사랑의 결실인 세 자녀는 모두 복수의 화살에 의해 비참하게 죽어버렸다. 조신은 몸부림치며 통곡하는 월낭을 안고 비오듯 눈물을 흘리면서 한스럽게 말했다.
   “월낭, 우리의 자식들은 이제 모두 불쌍하게 죽어버렸소. 우리의 금생의 사랑도 이제 끝이 난 것 같소. 월낭, 나는 낙산사 관세음보살상 앞에 그대에게 약속한 세세생생의 사랑은 변치 않겠소. 우리의 처지는

출처 : 양양 낙산사
글쓴이 : 용방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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