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계사 벚꽃 그늘 아래에서
- 윤슬 성두석 -
당신이 끝내 눈길 주지 않으리란 쓰라림에
한여름 폭우에도 촘촘히 여물게 매달고 있던
나뭇잎들을 늦가을 여린 바람에 떨구어 내듯이
그 사랑을 한 개 두 개 접기 시작하였었지요
한 잎 두 잎 떨어질 때마다 가지가 비어가듯
한 개 두 개 접을 때마다 가슴도 비어졌습니다
그러다 언젠간 바라봐 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잎겨드랑이마다 망울망울 소망을 담아 갔습니다
따스한 바람이 불고 햇살이 눈부신 어느 날
당신이 나를 말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 소망의 꽃망울마다 떨림으로 콩당거리고
설렘으로 부풀어올라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회색빛이던 하늘이 이젠 파랗게만 보입니다
비스듬하던 햇살도 이젠 내려쬐고 있습니다
찬바람만 매몰차던 가지엔 새들이 왔습니다
당신은 변했고 세상도 나도 달라져 보입니다
발뿌리에 채일 적마다 서릿발로 쩍쩍 가르며
아리게 하던 빗방울들이 굳어진 말초신경을
풀어 바람의 손끝 하나에도 숨결이 벅차 오고
막혔던 모세혈관을 열어 온몸이 뜨거워집니다
설렘이 부풀어 참을 수 없는 웃음꽃으로 터지고
떨림이 부풀어 참을 수 없는 황홀꽃으로 터지고
주체할 수 없는 기쁨들이 우리 사랑 온 세상에
자랑하고 싶어 행복꽃들을 활짝 터뜨렸습니다
살아오면서 가슴 켜켜마다 나뭇가지 사이처럼
뻥뻥 뚫리어 무시로 퀭해지고 땅거미가 지지만
당신을 생각하는 크고 작은 가지마다에 피어난
순백의 꽃들이 밤을 밝히고 새봄을 노래합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애써 피운 꽃잎들이 떨어지듯
그대 향한 내 사랑도 멈추어야 할 날이 오겠지요
함께 영원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아무리 땅속 깊이 박은 뿌리여도 바람이 듭니다
짧은 날들 피다 떨어져 영원을 가야는 걸 알기에
하얀 꽃잎마다 연분홍빛으로 저토록 짙어 가듯이
눈부신 날은 짧고 떨구어진 날은 영원할 것이기에
붉은 노을처럼 오늘 이 순간 아름답게 타오릅니다
어느 날 눈시울 적시는 눈물처럼 핑그르르 돌다
내 마음 멈칫멈칫 떨어져 내리어도 당신의 가슴에
그 설렘과 떨림의 꽃잎들, 기쁨과 웃음의 꽃잎들이
아름다운 순간으로 차곡차곡 쌓였으면 좋겠습니다
떨어진 꽃잎들이 흙이 되어 뿌리에 닿아 훗날
울적한 비에도 힘겨운 땡볕에도 반짝이는 잎처럼
힘들고 외로운 날이 오면 이 순간들이 당신을
미소짓게 하는 아름다운 추억이길 소망합니다
영원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수 없는
우리가 되어 만나 영원할 수 없는 사랑을 하지만
잎들이 돋기도 전에 피어나는 예쁜 벚꽃들처럼
오늘 당신과 아, 눈물겹도록 예쁜 사랑하고 싶습니다
님이 머문자리가 언제나 아름다운자리이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