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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00대 명산 도락산 포토기행

그대는 모르리 2007. 8. 23. 07:39

충북 단양에 있는 도락산으로 들어가는 날. 충주호반 도로를 달리면서 마치 숨겨둔 애인을 만나러 가는 사람처럼 마음이 설렌다. 호수와 호수 주변에 솟아 있는 금수산, 가은산, 말목산, 구담봉, 옥순봉, 제비봉, 사봉 등 높고 낮은 산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단양군 단성면 중방리 우화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단양천을 만난다. 단양천을 구비구비 돌아가는 길 왼쪽으로는 두악산과 덕절산이 굽어보고 오른쪽으로는 사봉에서 뻗어내린 산줄기들이 굽이친다. 단양천은 계곡과 바위경치가 아름다와 일명 삼선구곡(三仙九谷)이라 일컬어지는 선암계곡(仙岩溪谷)을 흘러 충주호로 들어간다.

 

소선암(小仙岩)에서 하선암(下仙岩)에 이르는 선암계곡의 기암절벽과 소나무들이 어우러진 경치에 눈길을 빼앗긴다. 하선암은 삼선구곡의 첫번째 명승지로 세 층으로 된 널찍한 너럭바위 위에 크고 둥근 바위가 덩그러니 얹혀 있는데, 그 모습이 미륵불과 닮아서 '불암(佛岩)'이라고도 부른다. 이 바위는 조선조 성종 때 임재광이 '신선이 내려와 노닐던 바위'라 하여 '선암'이라 이름지었다. 너럭바위 앞으로 흐르는 맑고 깨끗한 물속에 비친 바위그림자가 무지개처럼 영롱하여 하선암을 '홍암(虹岩)'이라고도 한다. 

 

*도락산 등산지도

 

가산리에 이르면 사인암과 상선암 삼거리가 나타난다. 도락산으로 가려면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계속 선암계곡을 따라서 올라가야 한다. 삼선구곡 가운데 여기서부터 상선암계곡이라 부르기도 한다. 삼선구곡의 중심지인 중선암(中仙岩)을 지난다. 중선암이라는 이름은 조선조 효종 때의 문신 곡운 김수증이 지었다고 한다. 하얀색의 바위 층층대 위로 흐르는 벽계수가 작은 폭포를 이루고 있는데, 이곳에서 두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어 '쌍룡폭(雙龍瀑)'이라 부르기도 한다. 중선암에 있는 크고 멋진 두 개의 바위는 각각 '옥염대(玉艶臺)'와 '명경대(明鏡臺)'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옥염대 암벽에는 '사군강산 삼선수석(四郡江山 三仙水石)'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 글씨는 조선 숙종 43년 관찰사 윤헌주가 쓴 것이다. 사군은 당시 이 근방의 단양, 영춘, 제천, 청풍을 말한다.   

 

*상선암


*상선암의 바위절벽

 

중선암에서 좀더 올라가면 도락산 들머리가 있는 상선암(上仙岩)이 나온다. 상선암은 퇴계 이황이 '속세를 떠난 듯하여 능히 신선이 노닐만 한 곳'이라는 말을 했을 정도로 삼선구곡 중에서도 가장 경치가 뛰어난 곳이다. 반석과 반석 사이로 흐르는 물은 얼마나 맑은지 비취색을 띠고 있다. 상선암이라는 이름은 조선 명종 때 우암 송시열(宋時烈)의 수제자인 수암 권상하(權尙夏)라는 사람이 지었다. 그는 이곳에 초정(草亭)을 짓고 '신선과 놀던 학은 간 곳이 없고, 학같이 맑고 깨끗한 영혼이 내려오는 그곳이 바로 상선암일세'라고 읊으면서 욕심없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상선암은 옹벽을 치고 포장도로가 개설되면서 옛모습을 많이 잃었다. 상선암 바로 위에는 깎아지른 듯한 바위절벽이 병풍처럼 서 있고, 절벽 밑에 있는 웅덩이는 맑디 맑은 명경지수를 담고 있다. 저 명경지수에 아직도 홍진의 썩은 명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때가 덕지덕지 낀 마음을 혹 들키기라도 할까 저어하여 선뜻 가까이 다가서지 못한다. 저토록 맑은 물에 내 탁한 마음을 씻는다면 명경지수가 더러워질 것 같다. 


*상선암에서 바라본 도락산 전경

 

상선암에서 바라보는 도락산의 능선들..... 오늘은 삼선삼봉 능선을 타고 제봉, 형봉, 신선봉을 지나 도락산 정상에 오른 다음 되돌아 나와 형봉과 채운봉 삼거리에서 채운봉, 검봉 능선으로 내려오려고 한다. 12시가 다 되어 상선암휴게소 앞에 놓인 상금교를 건너 도락산 들머리인 상선암마을로 들어간다. 산에 들어가기에는 좀 늦은 시간이다. 이렇게 느긋하게 시간을 잡은 것은 산에서 내려올 때 서녘하늘을 온통 붉게 물들이는 저녁 산노을을 보기 위해서다. 산에서 맞이하는 일몰무렵의 산노을은 이상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 


*상선암(上禪庵)

 

상선암마을을 지나 삼선삼봉(三仙三峰) 기슭에 자리잡은 상선암(上禪庵)에 이른다. 상선암은 태고종의 말사로 신라시대 의상(義湘)대사가 창건했을 당시에는 선암사(仙巖寺)라 하였다. 1822년(순조 22)과 1857년(철종 8) 두번에 걸쳐 중수하였으며, 1910년 대웅전이 헐려 페허가 된 것을 1956년 대웅전을 중건하면서 상선암으로 이름을 바꿨다. 상선암은 여섯 칸 규모의 맞배집인 대웅전과 1963년에 지은 산신각, 요사채만 갖춘 작은 암자로 대웅전 안에는 석가여래상 두 구와 관세음보살상, 탱화 세 점이 있다. 숙종 때 좌의정을 지냈던 권상하는 이곳에서 공부한 뒤 크게 깨달음을 얻어 송시열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그가 이곳을 찾아 경치를 노래한 시가 전해지고 있다. 또, 상선암에는 권상하의 문집인 '한수재집(寒水齋集)'과 그의 제자 한원진(韓元震)의 저서인 '남당기문록(南塘記聞錄)' 등의 판목(板木)이 있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초에 그의 후손들이 제천 황강(黃江)으로 옮겨 가고나서 6·25 때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삼선삼봉으로 오르는 암릉길

 

상선암에서 삼선삼봉 능선까지는 길이 편하다. 본격적인 산행은 삼선삼봉 능선에 올라서면서 시작된다. 삼선삼봉 능선은 곳곳에 가파른 암릉길이 도사리고 있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으로 머리에 쓴 모자는 이미 축축하게 젖어버렸다. 산을 오르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내려오는 사람뿐이다. 오늘도 산길을 홀로 걷는 호젓한 산행이 될 것 같다. 어차피 인생은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혼자서 가는 길이다. 그러기에 인생길은 고독한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고독한 삶의 여정에는 사랑하는 사람이나 좋은 벗과 같은 인생길의 동반자가 필요하다. 사람은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에.....   


*신선처럼 앉아 있는 바위

 

기암괴석과 소나무가 잘 어우러진 암릉길을 오르다가 만난 묘한 느낌을 주는 바위..... 마치 사람이 앉아서 눈을 지긋이 감은 채 명상이라도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삼선삼봉 능선에 자리잡고 있으니 저 바위는 신선바위라는 이름이 어울리겠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도를 닦으라는 말이 있다. 도(道)는 곧 길이니 도를 닦는다는 것은 길을 닦는다는 것이다. 즉 도를 닦는 것은 사람들이 편하게 잘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닦는 것이다. 때로 그 길은 가시밭길이 될 수도 있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그런 길을 마다하지 않았고 지저스 크라이스트도 그 길을 갔다. 체 게바라, 노먼 베쑨, 임거정, 전봉준, 전태일이 걸어갔던 길..... 또 어떤 사람들은 쉽고 편한 길을 택하기도 한다. 어떤 길이 옳은 길일까..... 나는 지금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천애고송(天涯孤松)

 

삼선삼봉을 오르다가 커다란 바위 위에 뿌리를 내린 한그루 소나무를 만난다. 그야말로 천애고송(天涯孤松)이다. 저 질기디 질긴 생명력..... 그만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만다. 나도 모르게 저 소나무에 매이는 내 마음..... 동병상련인가..... 소나무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텅 비었다.



*삼선하봉에서 바라본 형봉(왼쪽)과 채운봉(가운데), 검봉(오른쪽)

 

삼선삼봉의 첫번째 봉우리인 삼선하봉은 전망이 매우 좋다. 상선암마을 건너편에 있는 용두산과 사봉은 물론 멀리 금수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앞으로 가야할 형봉과 채운봉, 검봉은 시민계곡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삼선삼봉은 상선삼봉 또는 신선삼봉이라고도 하는데, 이 능선에 있는 세 개의 봉우리를 아울러 가리키는 이름이다. 지도와 안내판의 표기가 서로 달라 사람들로 하여금 헷갈리게 한다. 하지만 사람이 붙이는 이름이 무슨 대수랴. 산은 스스로 산으로 존재할 뿐..... 



*삼선삼봉 능선에서 바라본 삼선상봉과 제봉

 

삼선상봉이 문득 그 모습을 드러낸다. 앞에 있는 봉우리가 삼선상봉이요, 그 바로 뒤로 보이는 봉우리가 제봉이다. 삼선삼봉이라 함은 삼선구곡의 선암과 마찬가지로 세 개의 봉우리를 신선에 비유한 것이다. 봉우리 이름에서 옛선인들이 도가의 신선사상을 숭배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삼선중봉을 돌아서 오르는 나무계단길


*삼선중봉에서 바라본 하설산

 

삼선중봉은 험한 바위절벽이라 돌아서 올라가야 한다. 나무로 계단을 놓은 길 주위에는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아늑한 느낌을 주는 계단길..... 나무에 매달린 채 색이 바랜 단풍은 바람을 기다리는 것일까..... 이브 몽땅이 부른 '고엽'이란 샹송이 떠오른다. 낙엽을 밟으며 걷는 산길이 부드럽다.

 

중봉에 솟아 있는 바위봉우리에도 소나무가 깃들어 살고 있다. 수명을 다하고 고사목이 된 소나무..... 너는 그렇게 모진 풍상의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갔구나. 고사목 너머 저 멀리 보이는 산이 하설산(夏雪山, 1,027m)이다. 어느해 가을이던가. 길을 잃고 헤매다가 엉뚱한 곳으로 내려왔던 하설산..... 


*제봉 정상

 

삼선중봉에서 다시 한번 능선길을 더위잡아 삼선상봉에 오른다. 상봉은 밋밋한 봉우리로 나무들이 우거져 있어 전망은 별로 좋지 않다. 상봉에서 제봉까지는 엎어지면 배꼽 닿을 거리다. 삼선삼봉 능선의 정상인 제봉(弟峰, 818m)에 올라선다. 정상의 평평한 봉우리 한쪽으로 바위들이 박혀 있는 제봉도 산봉우리다운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제봉에서 형봉으로 가는 능선에서 바라본 신선봉

 

제봉에서 도락산으로 가려면 남쪽 능선을 타고 가야 한다. 군데군데 암릉길이 있지만 심하게 비탈진 곳이 별로 없어 걷기에 편하다. 제봉에서 도락산에 이르는 산맥은 마룻금이기에 전망이 좋은 곳을 많이 만난다. 도락산맥의 동쪽과 서쪽 사면은 판이한 경치를 보여 준다. 서쪽 사면은 주로 암릉과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져 있고, 동쪽 사면은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육산이다. 이젠 신선봉이 바로 앞에 보인다.  



*형봉으로 가는 암
릉길

 

쇠밧줄이 매어져 있는 암릉길 위로 이리저리 뻗어나간 소나무의 뿌리들..... 사람들의 발에 수없이 밟히고 또 밟혀서 껍질이 벗겨진 채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도 삶은 이어가야 하는 것..... 뿌리의 껍질이 벗겨지지 않고 살아남은 곳을 통해서 흙속의 물과 양분을 빨아들여야 한다. 상처뿐인 살아남은 자의 슬픔..... 


*형봉


*형봉 정상

 

지나온 제봉(동생봉)의 형님봉인 형봉(兄峰, 915m)의 암봉에 올라선다. 형봉의 바위봉우리 정상은 매우 비좁아서 까딱 잘못하면 수십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전망 하나만큼은 뛰어나다. 바위봉우리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주변 산들의 경치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형봉에서 바라본 제봉

 

형봉에서 무명봉과 제봉, 무명암봉에 이르는 산줄기가 북쪽으로 뻗어간다. 무명봉과 무명암봉 사이에 있는 봉우리가 제봉이고, 삼선상봉은 제봉 바로 왼쪽에 있는 조금 낮은 봉우리다. 주능선이 뻗어나간 방향으로 저 멀리 북쪽에 솟아 있는 산이 두악산(斗岳山, 732m)이고, 그 앞에 있는 산이 덕절산(德節山, 780m)이다.  

 


*형봉에서 바라본 채운봉

 


*형봉에서 바라본 검봉

 

채운봉과 그 다음 봉우리인 검봉은 형봉과 매우 가까운 거리여서 한눈에 들어온다. 채운봉은 뾰족하게 솟아 있고..... 검봉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능선들이 사방으로 뻗어내리고 있다. 산세를 제대로 보려면 적당하게 떨어진 곳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숲을 보려면 숲밖에서 바라보아야 하고, 나무를 보려면 숲으로 들어가야 하는 이치와 같다.   



*형봉에서 바라본 용두산

 

상선암계곡 건너편에는 용두산(龍頭山, 994.4m)이 의젓하게 앉아 있다. 용두산에서 상선암계곡쪽으로 뻗어나온 능선의 왼쪽 마을은 바깥산안이고 오른쪽 마을은 안산안이다. 바깥산안은 용두산 중턱의 분지처럼 생긴 아늑한 곳에 평화롭게 들어앉아 있는 마을이다. 바깥산안으로 올라가는 하얗게 보이는 길이 마치 폭포처럼 보인다. 언제 용두산에 올라 도락산의 전체적인 산세를 한번 보고싶다.

 


*형봉에서 바라본 사봉과 금수산

 

북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순한 산세를 가진 사봉(沙峰, 879m) 뒤로 금수산(錦繡山, 1,015.8m)이 우뚝 솟아 있다. 제비봉(721m)은 금수산과 사봉 사이에 숨어서 보이지 않는다. 하늘에는 솜털구름이 얇게 깔려 있다.  


*신선봉으로 오르는 계단길

 

형봉을 내려와 안부에 이르면 채운봉과 신선봉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는 단체산행을 온 산악회에서 산행방향을 표시한 종이를 작은 돌로 눌러놓은 것이 여러 장 보인다. 마지막으로 오는 사람이 거두어 가야 하는데, 귀찮아서 그랬는지 그대로 두고 갔다. 안부에서 무명봉 하나를 넘으면 신선봉으로 오르는 계단길이 나타난다. 저 계단을 오르면 신선이 되는 것일까..... 계단길에서 만난 한 무리의 단체산행객들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부터는 나홀로 산행이다. 도락산을 나 혼자서 독차지한 느낌이다.


*신선봉

 

*신선봉 정상의 연못

 

신선봉은 거대한 암봉으로 되어 있다. 신선봉은 도락산에서 전망이 가장 뛰어나다는 곳이다. 정상에는 오래 묵은 노송 몇 그루가 있어 운치를 더해준다. 펑퍼짐한 정상의 암반에는 물이 가득 들어 있는 연못이 있다.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다는 이 연못에는 숫처녀가 물을 퍼내면 금방 소나기가 내려 못을 도로 채운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연못의 바로 앞은 천길 낭떠러지다. 이 연못은 까마득한 바위봉우리 꼭대기에서 하늘만을 담고 있으니 하늘연못이 아니겠는가!   

 

*신선봉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황장산

 

*신선봉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소백산맥의 연봉들

 

신선봉에 서서 백두대간 황장산(黃腸山, 1,077m)을 바라본다. 남서쪽으로 가장 높은 산이 황장산이다. 대미산(大美山, 1,115m)에서부터 황장산을 지나 벌재을 향해서 백두대간이 동쪽으로 치달려 오는 모습이 장엄하다. 대미산에서 북쪽으로 뻗어간 산맥은 문수봉(文繡峰, 1,162m)과 매두막(1,099m), 하설산으로 이어진다. 이번에는 북동쪽으로 백두대간 소백산맥을 바라본다. 묘적봉(妙積峰, 1,148m)에서 도솔봉(兜率峰, 1,314m)과 삼형제봉(三兄弟峰, 1,261m)을 넘어 죽령을 건너뛴 뒤 연화연봉(蓮花連峰)과 비로봉(毘盧峰, 1,440m)을 지나 국망봉(國望峰, 1,421m)을 향해서 치달려가는 백두대간 소백산맥이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도락산 능선 너머로 보이는 네 개의 봉우리는 왼쪽부터 차례로 1286m봉, 삼형제봉, 도솔봉, 묘적봉이다. 죽령 너머로 소백산맥 제2연화봉(구연화봉, 1,357m), 연화봉(1,383m), 제1연화봉(1,394m), 비로봉의 연봉들이 아스라이 보인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설악을 지나 진부령에 이르기까지 나의 두 발자욱이 찍혀 있고, 땀방울이 떨어져 있는 백두대간..... 그래서 내 가슴속에는 언제나 백두대간이 꿈틀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신선봉에서 거침없이 뻗어가는 산맥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느덧 세상만사 다 잊어버린 신선이라도 된 것만 같다. 보름달이 뜨는 날 신선봉에 올라 하늘연못에 술잔을 띄워놓고 달빛에 젖은 산자락에 취하면 신선이 따로 없으리라.

 


*신선봉에서 바라본 도락산


*도락산 정상

 

신선봉에서 안부로 내려서면 도락산과 광덕암, 내궁기 사거리가 나타난다. 왼쪽은 광덕암, 오른쪽은 내궁기로 내려가는 길이다. 도락산 북쪽 사면에 자리잡은 광덕암은 고려때 공민왕이 난을 피해 몇 년간 머물렀다는 곳으로 계곡 아래에는 신라시대에 쌓았다는 독락산성(獨樂山城)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도락산까지는 백여 미터의 거리여서 한달음에 올라선다. 도락산은 키가 큰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 전망은 별로 좋지 않다. 정상에는 돌탑이 하나 있고, 그 옆에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빗재 건너편으로 동쪽에는 영인봉(825m)과 작은황정산(810m)이, 남동쪽에는 황정산(黃庭山, 959.4m)과 남봉(南峰, 950m)이 보인다.

 

도락산(道樂山, 964m)은 충북 단양의 단성면과 대강면의 경계가 되는 산이다. 우암 송시열이 '깨달음을 얻는데는 나름대로 길이 있어야하고, 거기에는 반드시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는 뜻에서 산이름을 도락산이라 지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조선 명종 초 퇴계 이황도 단양군수로 있을 때 도락산을 찾은 뒤 이 산의 절경에 감탄했다고 한다. 소백산과 월악산의 중간쯤에 자리잡은 바위산인 도락산은 깊은 계곡과 기암절벽으로 인해 산세가 웅장하고 경치 또한 아름답다. 소나무와 어우러진 기암절벽은 한폭의 진경산수가 따로 없다. 또한 도락산의 동쪽으로는 황장산에서 소백산에 이르는 험준한 백두대간이 지나가고 있어 장엄한 산맥의 파노라마를 볼 수 있다. 

 

*신선봉의 바위벼랑


*신선봉에서 바라본 채운봉과 검봉 능선

 

도락산 정상을 내려와 하산길에 오른다. 신선봉의 바위벼랑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와 보인다. 바위 틈바구니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소나무들.....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절경일지 모르지만 소나무들에게는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고 살아가야 하는 극한적인 생존의 현장일 뿐이다. 신선봉에서 바라보는 채운봉이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흙이 있는 산기슭에는 참나무들이 차지하고 있고, 바위투성이 능선에는 주로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소나무는 참나무에게 살기 좋은 터전을 빼앗기고 쫓겨난 것인가?

 

모든 살아 있는 생물은 냉엄한 생존경쟁을 피할 수 없는 법이다. 생존경쟁에서 패배하면 도태되거나 쫓겨나는 것은 인간이나 동식물이나 마찬가지다. 자연의 법칙은 이처럼 예외라는 것이 없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험하더라도 나는 사이먼과 가펑클이 부른 'Bridge Over Troubled Water'의 노랫말처럼 살아가리라.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채운봉으로 가는 암릉길

 

*채운봉

 

신선봉에서 아까 지나온 삼거리로 내려온 다음 채운봉으로 가는 능선길에 오른다. 채운봉으로 가는 길은 가파르고 험한 바위능선길이다. 암릉길이 끝나는 안부에는 내궁기로 내려가는 삼거리가 있다. 안부에서 채운봉까지는 가파른 비탈길이다. 도락산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느라 지치고 배도 고파서 그런지 채운봉을 오르는데 힘이 몹시 든다. 지쳤을 때 오르막길을 만나면 힘이 배는 더 드는 것 같다. 설상가상이라고나 할까..... 우리네 인생사도 이런 경우가 허다하다.

 

*채운봉에서 바라본 삼선하봉에서 중봉, 상봉을 지나 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채운봉에서 바라본 제봉에서 형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형봉(왼쪽 봉우리)에서 채운봉에 이르는 암릉길

 

*채운봉에서 바라본 형봉


*채운봉에서 바라본 신선봉(왼쪽)과 도락산(오른쪽)의 바위절벽

 

채운봉(彩雲峰, 864m) 정상에 올라서니 힘들게 올라온 보람이 있다. 이 봉우리 또한 형봉과 신선봉처럼 전망이 뛰어나다. 채운이라 함은 오색을 띤 아름다운 구름으로 서운(瑞雲) 또는 경운(景雲), 자운(紫雲)이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하늘에 채운이 떠 있으면 나라에 큰 경사가 있을 징조라고 생각하였다. 

 

상서로운 기운을 가진 채운봉에 올라 지나온 산봉들을 돌아본다. 형봉에서 신선봉, 도락산에 이르는 기암절벽의 능선이 공룡능선의 축소판과도 같다. 채운봉에서 바라볼 때 비로소 도락산의 진수가 드러난다. 채운봉에서는 삼선하봉에서 중봉, 상봉을 지나 제봉, 형봉을 거쳐 신선봉, 도락산에 이르는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퇴계 이황도 아마 이 채운봉에서 도락산의 기암절벽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장관을 바라보고 감탄했으리라.    



*채운봉에서 바라본 시민골

 

채운봉에서 발원해서 상선암계곡으로 흘러드는 시민골의 깊은 계곡도 한눈에 들어온다. 저 아래로 상선암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도락산의 계곡 중에서는 시민골이 가장 아름다운 계곡이다. 상선암계곡도 아름다운데다가 시민골의 양쪽으로는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진달래와 산벚꽃이 활짝 피어나는 봄철에는 도원경을 방불케 하지 않을까 한다. 꽃피는 춘삼월 채운봉에 오색구름이 드리우고, 삼선삼봉의 세 신선이 시민골에 내려와 노닐면 그게 바로 도원경이 아니랴. 

 

*채운봉에서 바라본 검봉

 

채운봉을 내려가는 길은 가파른 바위능선으로 밧줄과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그리 힘이 들지 않는다. 꽤 오래 전 계단이 설치되지도 않았을 때 도락산에 올랐다가 이 구간에서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검봉은 이제 바로 앞에 다가와 있다. 해는 이제 서산에 한뼘 정도 남아 있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지 않는다.  

 

*검봉에서 바라본 채운봉

 

채운봉을 내려와 안부에서 검봉으로 오르기 전에 잠깐 숨을 고른다. 검봉을 오르는 길은 암릉길이기는 하지만 그리 험하지는 않다. 검봉 정상 조금 못 미친 곳에서 능선을 타고 궁터골 사모폭포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검봉(劍峰, 825m) 정상에 올라서니 해가 서산으로 막 넘어가고 있다. 검봉에서 바라보는 채운봉은 형봉에서 바라볼 때와 또 다른 모습이다. 칼등처럼 가파르고 험한 바위절벽에 놓인 철계단이 위태로와 보인다.


*검봉에서 내려다 본 내궁기마을

 

검봉과 채운봉 사이에 있는 계곡의 입구에 자리잡은 내궁기마을이 빤히 내려다 보인다. 궁터골계곡 입구에는 궁터골마을이 있고, 외궁기라는 마을도 있어 이것이 예사로운 곳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궁(宮)'은 궁궐을 말하는 것이니 곧 왕이 머물렀던 궁터가 있었던 곳임을 짐작케 한다. 내궁기는 이성계에게 쫓긴 공민왕이 묵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마을이다. 지금도 내궁기마을 사람들에게 물으면 공민왕이 묵었다는 집터를 안내해준다고 한다. 또 궁터골은 공민왕이 궁궐을 짓고 살았다는 전설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쫓기는 신세가 된 공민왕의 슬픈 전설이 서려 있는 궁터골을 바라보면서 권력의 무상함을 새삼 깨닫는다.  


*범바위에서 바라본 제봉에서 형봉에 이르는 능선


*범바위에서 바라본 형봉과 채운봉

 

검봉에서 범바위로 내려가다가 전망이 좋은 곳을 만나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해는 이미 서산에 지고 땅거미가 밀려오고 있다. 저녁 어스름이 감도는 능선과 산봉우리들을 되돌아본다. 무슨 아쉬움이 남아서일까? 그러고보면 오늘 저 산봉우리들과의 만남도 하나의 인연인 것이다. 어떤 인연이던지 인연이란 소중한 것.....  그래서 인연과의 이별은 언제나 슬프고 안타까운 법이다. 인연을 두고 떠나야만 하는 아쉬움에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문득 수해스님의 시집 제목 '山 두고 가는 山'이란 의미를 알 듯도 하다. 


*큰선바위


*작은선바위

 

범바위에서 가파른 비탈길을 타고 큰선바위로 내려간다. 해가 지기는 했지만 아직 어스레한 빛이 남아 있어 어둡지는 않다. 큰선바위는 거대한 창날을 세워놓은 듯이 솟아 있다. 큰선바위에서 10분 정도 내려가면 작은선바위가 나타난다. 작은선바위에 이르자 길이 좀 편해진다.  

 

*시민계곡의 다리


*시민계곡 폭포

 

시민계곡에 가로놓인 다리를 건넌다. 한동안 비가 오지 않은 탓으로 계곡의 바닥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비가 많이 오는 철에는 다리 바로 위에 있는 바위벼랑은 계곡물이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로 변한다. 다리를 건너면 큰길이 나타나고 사실상 산행은 끝난다. 큰길을 따라서 조금만 내려오면 상선암마을이다.  



*상선암마을 입산로 입구

 

상선암마을을 내려와 상금교를 건넜을 때는 이미 날이 꽤 어두워져 있었다. 그 많던 사람들과 차량들은 다 사라지고 없다. 마을입구에 서 있는 가로등만이 쓸쓸히 빛나고 있을 뿐..... 도락산의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하늘금에 짙푸른 하늘이 내려와 있다. 어둠속에 잠긴 도락산 산그리메를 뒤로 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오른다. 산을 오르면서 비우고 또 비우고자 했던 내 마음자리 속으로 들어와 자리잡은 도락산과 함께..... 도락산은 그렇게 나의 산이 되었다.

 

2006년 11월 19일

출처 : 100대 명산 도락산 포토기행
글쓴이 : 林 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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