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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그대는 모르리 2007. 8. 23. 07:49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예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예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마음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거예요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예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예요
나를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마음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거예요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예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예요


▲ 선운사에서 도솔암으로 이어지는 숲길 옆으론 개울물이 흐르고 건너편엔 차밭이 있다. 이 숲길을 걷지 않아도 도솔암엔 갈 수가 있다.

두 눈 지긋이 감고 갸우뚱한 고개에 꺾어진 날개처럼 손목 떨군 한쪽 팔을 어깨 높이로 들어올린 모습이 연상되는, 중년이 훨씬 넘은 송창식이란 가수가 자꾸 "선운사엘 가신 적이 있나요"하고 묻더니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라며 이어 묻는 노래가 있다.

그의 노랫말을 들으면 "바람불어 설운 날 그곳 선운사엘 가면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을 볼 수 있을 듯하다. 선운사 동백꽃이 얼마나 좋기에 매년 이맘때가 되면 어김없이 "선운사엘 가 봤느냐?" 노랫말로라도 묻는지 궁금해진다.

미당 서정주도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라고 "선운사 동구"라는 시에 선운산에 있는 선운사 동백꽃과 주변의 분위기 일말을 묘사했다.

이쯤만 알고 선운사를 찾게 되면 선운사를 다 알지 못하는 만큼 보지 못한 게 있을 법하다. 선운산엘 가면 꼭 봐야 할 것이 따로 있는데 알지 못하기에 그것을 빼먹고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생긴다.

▲ 선운사에서 30여 분 걸어가면 불심 깊은 진흥왕이 도솔왕비와 중애공주를 데리고 와 기도를 하였다는 진흥굴이 나온다. 진흥굴 앞에는 늘씬하게 뻗은 장사송이 있다.

이미 널리 알려진 동백꽃과 풍천 장어 그리고 복분자 술로 유명한 전북 고창 선운산엔 선운사 말고도 또 다른 진면목이 감춰진 산사가 있다. 선운산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도솔암이 선운산의 드러나지 않은 진면목이며 8, 9월에 동백꽃보다 더 붉게 흐드러지게 피는 상사화가 또 하나의 진면목이다.

빠듯한 일정 탓도 있겠지만 선운산에 들르는 많은 사람들 중엔 입구에 있는 선운사에 들러 주변에 흐드러지게 핀 동백꽃과 가람의 겉모양만 보고 좋은 곳을 구경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게다가 풍천장어를 안주로 복분자 술이라도 한 잔 마시게 되면 넘치는 여력(?)을 어찌할까 고민하는 그런 행복한 여행길이 된다.

하기야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사람 사는데 먹는 재미 빼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도 싶다. 아무리 풍치가 좋아도 허기진 눈으론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게 여행이니 여행지에서 좋은 먹거리는 요건 중의 하나다. 호강하러 나선 건 아니나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먹을 것 맛나고 건강에 좋은 먹거리가 있는 곳으로 구경을 가는 거야말로 여행의 금상첨화라 해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곱씹어야 음식의 제 맛을 알고 양분을 충분히 흡수하듯 선운산은 다리 품을 팔고 없는 시간을 쪼개더라도 10여리 안쪽으로 들어가는 도솔암을 꼭 봐야 볼 것 제대로 보고 투자한 여행경비의 본전을 찾는 셈이라 말하고 싶다.

▲ 도솔암 건너편에 있는 천마봉. 하늘을 난다는 의미일 천마를 타면 미륵정토 도솔천 내원궁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석가탄신일이 얼마 남지 않아 그런지 산사 찾아가는 길 여기 저기엔 꽃 연등이 걸려있다. 연녹색 수풀을 배경으로 부는 바람에 끄덕끄덕 흔들리고 있는 원색의 연등이 곱기도 하다. 자칫 단색의 연녹색 수풀에 길손이 무료할까 그랬나 단맛이 우러날 듯 눈깔사탕을 닮은 고운 빛깔의 연등이 길목을 주렁주렁 치장하고 있다.

선운사를 지나 도솔암으로 들어가는 10여 리 진입로는 차를 이용해 갈 수도 있지만 걸어 들어가야 제격이다. 넉넉한 마음으로 천천히 걸으며 두발로 딛게되는 황톳길이 도솔암을 찾아가는 길손의 오감에 산사 찾는 감칠맛을 더해 준다.

경사진 듯 평탄한 듯, 쪽 곧은 듯 구부러진 듯 완만한 진입로는 촉감 좋게 다져진 흙 길이다. 무수히 오간 사람들이 흘리고 간 땀과 발자국, 아름다운 추억과 간절한 기도가 배어들고 빚어낸 불심의 비단길이다. 양옆으로 늘어선 아름드리 나무들이 빛 한줄기 숨어들지 못하게 빼곡한 숲 그늘을 만들고 있다.

산들바람에 여린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물소린 듯 목탁소린 듯 가물가물한 이런저런 소리들이 기분 좋게 귓전에 머물다 간다. 이런 길 걸으며 마음 열리지 않을 이 한 명도 없겠다. 이런 길 걸으며 행복을 느끼지 못할 이 하나도 없겠다는 생각이다.

▲ 천마봉에서 내려다본 도솔암 전경. 마애불상이 새겨진 좌측 바위 위로 "도솔천내원궁"이 있다.

그런 흙 길을 30분쯤 걷다보면 오른쪽으로 늘씬하게 뻗은, 천연기념물 354호로 지정되고 수령이 600년이나 된다는 "장사송"이라 부르는 소나무를 보게 된다. 그 소나무 우측으로 몇 걸음 옮기면 참선하기 딱 좋을 만한 크기의 자연동굴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오랫동안 밝힌 촛불 그을음에 내벽이 거무튀튀하게 변색되어 있지만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정면으로 다가서는 불상과 촛불의 심오함에 끌려 두 손을 가슴에 얹게 된다. "불심 깊은 진흥왕이 도솔왕비와 중애공주를 데리고 와 기도를 하였다"는 전설이 담겨진 진흥굴이 바로 이 굴이다.

이쯤이면 이미 선운산 폐허 깊이 만큼이나 들어온 셈이다. 진흥굴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가파른 오름길이 이어지니 그곳이 도솔천 내원궁으로 들어가는 목전이라 할 수 있다.

지명이나 산 이름에 유래가 있고 전설이 있듯 선운산 또한 그 이름에서 불교와 깊은 인연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선운산"을 "도솔산"이라고도 부르는데 선운(禪雲)이란 "구름 속에서 참선을 한다"는 뜻이고 "도솔"이란 미륵부처님이 있다는 "도솔천궁"의 뜻이다. 그러니 선운산이라 부르던 도솔산이라 부르던 선운산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행하며 내세(來世)의 불국정토를 위해 불도를 닦는 산이라는 뜻이 된다.

▲ 비탈길을 오르다 맞게되는 평지 정면으로 대웅전이 있다.

선운사 사적기에 도솔암과 선운사는 함께 창건된 것으로 되어 있으니 도솔암의 역사나 창건연대는 선운사와 같다고 생각하면 될 듯싶다. 불교에서 말하는 하늘나라엔 "도솔천"이라는 나라가 있고 그 곳에는 내원궁(內院宮)과 외원궁 두 궁전이 있다고 한다.

외원궁은 하늘나라 일반 중생이 살고 있는 곳이며, 내원궁은 미륵보살의 정토(淨土)라 한다. 그런 도솔천 내원궁이 선운산 깊숙한 도솔암에 있으니 이곳이 곧 미륵보살의 정토란 뜻인가 보다.

도솔암으로 오르는 비탈진 진입로에서 좌측으로 시작되는 샛길이 있으니 이 길을 따르면 용문굴도 갈 수 있고 천마봉에도 오를 수 있다. 하늘을 난다는 의미를 가졌을 천마(天馬)를 타야만 미륵정토 도솔천 내원궁을 한눈에 볼 듯싶으니 기꺼이 올라보는 게 좋겠다.

천마봉으로 오르는 길은 무척이나 가파르지만 잘 정돈되어 있어 서두르지 않으면 복장에 관계없이 누구든 오를 수 있다. 쉬엄쉬엄 오르다 보면 어느새 천마를 타고 있는 천상의 마주가 되어 있다.

굽어보는 도솔산이 아름답다. 한 눈에 들어오는 도솔산과 도솔암의 조화가 경이롭다. 깎아지른 듯, 오밀조밀 쌓아 올린 듯 오묘하게 어우러진 기암의 바위와 나뭇잎 사이로 살짝살짝 드러낸 도솔천 내원궁이 참 아름답다. 내원궁을 받치고 있는 커다란 바위엔 마애불이 조각되어 있다.

▲ 대웅전에서 왼쪽으로 다시 한 번 휘어지고 굽어지며 도솔천으로 오르는 길에도 고운 연등이 달려 있다.

원래 도솔암엔 위, 아래 그리고 동, 서, 남, 북으로 여섯 도솔이 있었으며 현재의 도솔천 내원궁이 상 도솔, 마애불상이 있는 곳이 하 도솔 그리고 현재의 대웅전 터에 북 도솔이 있었다고 한다. 일부는 그 흔적을 확인하기 곤란하고, 지금은 이 모두를 합쳐 그냥 도솔암이라 부르고 있는 모양이다.

비탈진 오르막길을 올라 평지로 올라서면 종무소와 신도들이 기도하며 기거할 수 있는 숙소가 오른쪽으로 있다. 도솔암에서 가장 큰 규모의 건물로 깔끔한 기와지붕의 한옥이다.

대웅전은 오르막길 정면 산 쪽에 있다. 대웅전에서 왼쪽으로 다시 한번 휘어지고 굽어지는 산길을 조금 오르면 또 다른 평지가 나온다. 그 그곳엔 공양간이 있고 나한전이 있으며 올라선 오른쪽으로 "도솔천내원궁"이란 글씨가 써진 작은 대문처럼 보이는 출입문이 보인다.

나한전 앞을 지나 몇 걸음 안쪽으로 들어가면 천상의 세계 내원궁을 버팀목처럼 받치고 있는 커다란 바위에 각인 된 마애불상을 참배하게 된다. 아래로 다가서니 하늘에 닿을 듯 커다란 바위다. 수직의 태산 같은 바위에 동양최대의 마애불을 어떻게 조각하였을까 경이롭기만 하다. 이 높은 바위 위로 내원궁이 있다는 걸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 동양 최대의 크기라는 마애불이 각인 된 천인암, 이 바위 위에 도솔천 내원궁이 자리잡고 있다.

"도솔천내원궁"이라 쓰여진 작은 문을 들어서면 가파른 돌계단이 이어진다. 계단을 따라 곧장 올라가면 마주가 되어 천마봉에서 바라보았던 내원궁으로 들어선다. 지장보살이 봉안되어 있는 팔작지붕의 작은 전각이다. 흙 한줌 없는 바위 꼭대기서 우산처럼 펼쳐진 소나무가 만들어 내는 그늘에 기대니 그 생명력이 경이로울 뿐이다.

이곳 도솔암은 한국 3대 지장기도도량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내원궁 좌측을 돌아 뒤로 가면 아슬아슬한 벼랑 위에 산신령을 모셔놓은 산신각이 있다.

일반인들 출입을 제한하고 있는 내원궁 오른쪽 바위에 오르니 너럭바위다. 천상의 소리가 들리고 속세의 하릴없는 온갖 다툼이 보일 듯하다.

한라산 최고봉에도 올라보았고 지리산 천황봉, 월악산 영봉에도 올라 아래로 펼쳐지는 이런저런 모습들을 봤지만 그 어떤 장관과 경이로움에 뒤지지 않는 후련함과 야릇한 느낌이 전해지는 곳이다. 불현듯 좌선에 들고싶은 욕구가 생긴다.

교리를 모르고 법문을 몰라 내로라 하는 스님들처럼 설법을 할 수 없고 염불은 하지 못하나 혼자의 마음을 다스리며 참 나를 돌이켜 보는 참선의 삼매엔 누구든 들 수 있게 할 그런 자리가 될 듯하다.

▲ 나한전이 있고 마애불이 있는 곳에서 "도솔천내원궁"이란 편액이 달린 문을 들어서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서면 그곳에 내원궁이 있다.

눈으로 보이는 모든 것, 들려오는 모든 것, 오감에 와 닿는 모든 것이 자아를 들여다보게 하는 가르침이며 눈 틔움이다. 휘적휘적 걸어 들던 진입로가 한 눈에 들어오고 코끝에 와 닿는 공기의 맛과 상큼함이 지금까지의 그것들과는 다르다.

지금껏 숨쉼이 코와 기관지 그리고 핏줄을 통해 걸러지고 정화되며 머리와 가슴에 생명을 연명키 위한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다면 너럭바위에서 숨쉼은 천상의 느낌과 천하의 느낌이 거리낌없이 조화하며 온몸을 휘감는 무아의 호흡이다.

위험이 있을 수 있기에 누구든 오를 수 없게 철망이 쳐진 곳이란 아쉬움에 선뜻 발걸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리. 머물 수 있는 자리가 아닌걸. 커다란 걸음으로 펄쩍 뛰면 건너편 천마봉에 오를 듯 하다.

도솔천 내원궁은 결코 닿지 못한 염불 속 세상만은 아닐 수도 있단 생각이 든다. 천상천하 어느 곳에도 존재할 천마를 부릴 수 있는 마주가 될 수만 있다면 도솔산 천마봉에서 바라보았던 그와 같은 내원궁을 찾아갈 수 있으리란 생각이다. 갈구하는 내원궁은 이미 내 마음속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하산하는 황톳길이 비단결처럼 발길에 다가온다

▲ 마애불이 각인된 천인암 위로 도솔천 내원궁이 들어서 있고 그 뒤로 산신각이 있다. 오른쪽 너럭바위로 올라서면 날개를 달고싶다. 그러나 결국 내원궁은 내 맘속에 있는 듯하다.

천마를 부릴 마주가 되는 길은 마음 닦고 이를 실천하려는 혹독하고 부단한 자아성찰에 있다는 생각이다. 흐드러지게 핀 동백꽃도 좋고 풍천장어와 복분자 술도 좋겠지만 천마봉에 올라 조심스레 들여다본 내원궁이 보여주는 조화의 신비로움과 어우러짐의 아름다움이 선운산의 감칠맛이 분명하다.

출처 :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글쓴이 : 산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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